유병권 논설위원
李 대통령 ‘정의로운 통합’ 강조
‘국민 대통합’ 발언 찾기 힘들어
내란 종식과 책임자 처벌 핵심
계엄 찬성·탄핵 반대 10~30%
지선 앞두고 국민 갈라칠 위험
통합의 정치·국정 약속 지켜야
대통령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6개월 동안의 일정과 발언을 찾게 된 것은 우상호 정무수석의 발언 때문이었다. 우 수석은 지난 7일 열린 이재명 정부 6개월 성과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종교·시민사회 지도자들과 이 정도로 만남을 가진 대통령은 없었다”며 “국민 갈라치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 않다”고 했다. 우 수석의 말에 선뜻 수긍하지 못한 것은 4일 전 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1년 빛의 혁명 행사에서 “정의로운 통합”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조건을 단 통합을 통합이라 할 수 있나, 갈라치기가 아닌가, 기준이 정의라면 누구의 정의인가, 그럼 탄핵에 반대했던 국민은 통합 대상이 아니라는 건가 등등의 생각이 엉켜 있었을 때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6개월간(12월 12일 기준) 284건의 행사에 참여했고, 246개의 말과 글을 남겼다. 비공식 일정은 포함돼 있지 않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두 차례(7월 3일 오찬, 8월 20일 만찬) 만났고, 상임고문단과 한 차례(8월 21일) 오찬을 같이했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야5당 대표와는 오찬 회동(7월 3일)을 했고, 종교지도자들과 한 차례(7월 9일 오찬) 만났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당 대표를 함께 불러 두 번(6월 22일·9월 8일 오찬) 만났지만, 우 수석 말처럼 전례가 없을 정도로 자주 만난 것으로 보긴 어렵다. 공개된 일정의 상당 부분은 APEC 등 바쁜 외교 일정으로 채워졌다.
이 대통령의 말과 글에서 ‘국민 대통합’이란 단어를 찾지 못했다. ‘국민 통합’이란 말도 두어 번밖에 검색이 안 됐다. 반면, ‘정의로운 통합’은 취임사, 취임 30일 기념사, 빛의 혁명 1주년 기념사 등에서 거듭 강조됐다. 취임사에서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를 약속하며 “내란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30일 뒤에는 “3대 특검이 내란을 완전히 종식하고, 헌법질서와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정의로운 통합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계엄 1년을 맞아서는 “국민주권의 빛을 위협할 수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정의로운 통합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에게 동전의 양면처럼 통합과 붙어 있는 정의는 내란 종식인 것이다.
그러나 통합에 조건을 달면 통합이 아니다. 생각과 조건과 환경이 각기 다른 수많은 개개인이 모인 국민 통합은 더더욱 그렇다. 여러 조사에서 비상계엄에 대해 ‘잘못한 일’이라는 평가는 대략 70% 안팎으로 나오고, ‘잘한 일’이라는 평가는 10%대 수준이다. 비상계엄이 내란죄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 ‘해당한다’는 응답이 70% 정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0%대 수준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응답은 30%대에 달하기도 했다. 비상계엄에 찬성했고,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고,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보지 않는, ‘정의롭지 않은’ 국민은 통합 대상이 아닌 것이 된다.
IMF 외환위기와 영호남 지역 갈등,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집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로 증오와 보복의 정치를 끝내자는 국민 통합을 강조함으로써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했다.
이 대통령은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2024년 총선거와 2025년 대선 등 중대 선거 때마다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승리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의로운 통합을 강조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생각되는 이유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선거의 본질상 내란 종식을 기준으로 한 통합은 이 대통령의 의도와 상관없이 국민 편 가르기가 될 위험성이 크다. 더욱이 이 대통령은 권력이 최대치로 집중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집권 1년 차다. 민생경제와 인공지능(AI) 대전환 등 정책과 달리 정치는 권력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민심의 반작용과 심각한 후과가 남는다. 내란 종식은 민주주의 발전과 국가 성장을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업이다. 그러나 내란 종식과 국민 통합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대통령이 취임 100일 때 한 약속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에 따라 통합의 정치, 통합의 국정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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