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김진규 고려대 비전&AI랩 교수

자율주행 기술의 패러다임은 최근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이 일일이 규칙을 정해주는 규칙 기반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이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판단하는 E2E(End-to-End) 방식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데이터의 양과 모델의 크기가 커질수록 지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스케일링 법칙이 자율주행에도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테슬라가 이미 2022년부터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자율주행 모델 학습과 데이터 수집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시점에 정부가 ‘AI 대전환 15대 선도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율주행차 제작 지원, 관제센터 구축 등을 포함한 실증도시를 지정·운영하려는 계획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실증도시라는 하드웨어 구축을 넘어 그곳에서 쏟아져 나올 데이터를 처리할 전용 데이터센터라는 소프트웨어적 인프라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미국의 ‘M-City’가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이유는 통제된 환경 속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반복 실험하며 양질의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실증도시 역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전용 데이터센터 구축은 효율성 측면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수백 대의 차량이 실증도시에서 쏟아내는 방대한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40TB(자율주행차 10대의 1일 생성량)의 데이터를 클라우드 방식으로 업로드할 경우 약 9시간이 소요되지만, 전용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유선으로는 50분 내외로 단축할 수 있다.

또 소버린 AI 구현과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독자적인 인프라가 필요하다. 자율주행 인증·검증에는 국토지리정보(GIS)와 같은 정밀 데이터가 필수적으로 활용된다. 이는 국가 자산이자 안보와 직결되는 민감 정보이므로 해외 클라우드 기업에 맡기기보다는 공공이 관리하는 온프레미스(On-premise) 환경에서 철저히 관리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데이터센터는 국내 자율주행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현재 E2E 자율주행 모델 개발을 위해서는 수백, 수천 개의 고성능 GPU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스타트업, 대학 연구실이 개별적으로 이런 인프라를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실증도시와 연계된 공유형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진입 장벽을 낮춰준다면 인프라 구축 부담에서 벗어나 알고리즘 고도화와 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자율주행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지표가 되고 있다. 실증도시가 자율주행차라는 몸체가 뛰어놀 운동장이라면, 전용 데이터센터는 그 경험을 지능으로 바꾸는 두뇌다. 국토교통부가 이 두 가지 축을 단단히 세울 때 대한민국은 피지컬 AI 시대의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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