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기의 K스트리트 -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한국의 보물…’ 인기

 

‘이건희 컬렉션’ 330여개 작품 전시… 오전부터 북적

인왕제색도·해학반도도 등 한국미로 관람객 발길 붙잡아

현지인 “도자기 선 아름다워 눈 못떼”… 교민은 “눈물날 지경”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보물-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전시회를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관람객 뒤로 보이는 그림은 1892년 고종 즉위 30주년과 41세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를 묘사한 8폭 병풍, 임진진찬도(壬辰進饌圖)다. 박용훈 등 7명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보물-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전시회를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관람객 뒤로 보이는 그림은 1892년 고종 즉위 30주년과 41세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를 묘사한 8폭 병풍, 임진진찬도(壬辰進饌圖)다. 박용훈 등 7명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워싱턴=글·사진 민병기 특파원

“코리안 트레저 전시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주말인 13일(현지시간) 오전 10시,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지하철역에서 바로 이어진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문이 열린 직후 들어선 한 백인 여성이 ‘한국의 보물-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이 열리는 전시장을 문의했다. 같은 시간 박물관에는 일본 관련 특별 전시 두 개가 열리고 있었고, 전통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피콕룸’(공작새방)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자연스레 동관 건물(아서 새클러 갤러리)로 향했다. 상대적으로 오후보다 방문객이 적은 오전인데도 10개 주제별로 꾸며진 전시 공간은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 정지)이 끝나고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한 뒤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의 주인공은 ‘이건희 컬렉션’이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필두로 2025년도에도 여전했던 K-팝과 K-컬처의 힘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도슨트로 일하고 있는 중국계 윌터 우는 취재도 잊고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바라보며 청와대 출입 당시 비 갠 뒤 하늘과 인왕산의 모습에 빠졌던 기억에 취해 있던 기자에게 다가와 “인왕제색도만큼 강렬함을 주는 작품은 많이 못 봤다”며 “다른 작품들도 더 잘 소개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정말 내가 봤던 인왕산과 똑같다”고 답하자 그는 “그간 내 소개를 들은 많은 이가 이 그림에서 ‘강렬함’을 느꼈다고 말했다”고 했다. 잠시 후 윌터의 영어 도슨트 투어를 잠깐 함께했다. 윌터는 관람객들에게 “인왕제색도는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다”며 “다음 주 수요일(17일)까지만 여기 걸리니 못 본 사람이 있으면 꼭 같이 와서 보라”고 조언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7일까지 전시되고 이후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로 교체된다.

미국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한국의 보물-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전시실 입구 모습. 책가도(冊架圖)가 형상화돼 있다.
미국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한국의 보물-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전시실 입구 모습. 책가도(冊架圖)가 형상화돼 있다.

70대 백인은 조선 후기 불로장생의 반도(복숭아)가 열린 장면을 묘사한 병풍인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 앞에서 학과 복숭아의 의미를 물으며 작품을 한참 감상했다. 조선백자 달항아리(Moon jar)를 포함, 전시 공간 곳곳에 자리 잡은 도자기도 많은 관람객의 발을 멈추게 했다. 메릴랜드에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온 60대 제시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왔는데 기대 이상”이라며 “특히 전시된 도자기들의 선이 너무 아름다워 눈길을 뗄 수가 없다”고 말했다.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는 이종락 씨는 “그동안 간간이 한국의 유물을 전시하기도 하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찾아왔는데 가끔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여기 아시아박물관만 해도 한국관이 작게 있는데 이렇게 관리해 주는 스미스소니언이 고마울 정도”라며 “이건희 회장이, 삼성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렇게 다양한 시대의 좋은 작품들을 모으고 골라서 전시해 주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이 씨의 친구는 “한국을 잘 모르는 아들 놈에게도 꼭 보라고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두 사람이 한참을 멈춰 작품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용도’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던 곳은 전시의 마지막인 책가도(冊架圖)였다. 조선 후기 책장 위의 문방사우(붓, 벼루, 먹, 종이)와 화병, 꽃, 도자기 등을 자유롭게 그린 민화를 본떠 작품들을 배치해 놓은 전시다. 양옆의 터치스크린을 통해 전시 작품의 실제 이름과 용도, 사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여 명의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중국어 도슨트 투어도 진행됐는데 이들 역시 도슨트의 설명이 끝난 뒤 책가도에서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더 머물렀다. 아빠와 함께 온 중학생은 책가도의 ‘갓’을 보고 기자에게 이게 ‘사자보이즈’(케데헌에서 악귀들이 만든 보이그룹)의 모자냐고 묻기도 했다.

외국인들의 시선은 한국의 ‘유물’에만 머물진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2만3000여 점의 작품 가운데 선별된 330여 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의 고대부터 근현대까지를 아우르는데, 전통적인 시대별 구분이 아니라 주제에 맞춰 시대별 작품이 배치돼 있었다. 경복궁을 그린 박대성의 ‘돌담’을 조선 왕실의 미술 작품과 함께 두는 식이다. 박수근, 이응노, 김환기 등 한국의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도 주목받았다. 특별전이 열린 지 한 달이 지나서인지 쓸 만한 ‘뮷즈’(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도 동났다. 그만큼 한국 문화에 대한 미국 내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건희 컬렉션의 워싱턴DC 전시는 내년 2월 1일 마친다. 이후 시카고에서 일부 작품이 교체돼 내년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민병기 특파원
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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