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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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은 오늘날 깊은 사유에 잠긴 인간을 상징하는 조각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이 이미지와 작품의 실제 기원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우선 ‘생각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독립 조각으로 기획된 작품이 아니었다. 이 조각은 대규모 프로젝트 ‘지옥의 문’의 일부로, 문 상단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인물상이었다. 이후 이 인물이 독립적인 조형미를 인정받아 전시되기 시작하면서, 로댕은 원형을 여러 차례 확대해 대형 청동 조각으로 다시 제작하게 된다. 오늘날 박물관이나 공공장소에서 마주하는 ‘생각하는 사람’은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당시 로댕은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신곡’ 중에서도 ‘지옥편’을 바탕으로 지옥의 세계를 조각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지옥의 문’ 상단에 배치된 이 인물은 문 아래 펼쳐진 지옥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존재로, 로댕은 이를 ‘인간의 죄와 운명을 관조하는 시인 단테’라는 상징적 인물로 설정했다. 즉 이 조각의 최초 의미는 추상적인 ‘사색하는 인간’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서사를 이끄는 단테의 고뇌와 성찰이었다.

이 점에서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고요하고 차분한 명상의 순간’은 로댕의 의도와 다소 거리가 있다. 굽은 등과 앞으로 숙인 자세, 움켜쥔 발, 단단히 수축된 허벅지와 어깨에 응축된 근육은 평온함보다는 긴장과 고통을 드러낸다. 이는 사유가 머릿속에만 머무는 상태가 아니라, 내면의 갈등과 번민이 신체 전체로 확산된 모습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목 역시 로댕이 처음부터 붙인 명칭은 아니었다. 작업 당시 이 인물은 ‘시인(Poet)’으로 불리거나, 단순히 ‘지옥의 문’의 일부로 인식됐다. 본래 이 조각은 문 위에 앉아 ‘신곡’의 세계, 곧 인간의 죄와 고통이 펼쳐진 지옥을 내려다보는 작은 단테의 형상이었을 뿐이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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