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안 인터뷰 - 이덕환서강대 명예교수
韓 화학산업 출발은 요소인데
환경 오염·에너지 낭비 이유로
정부가 2012년 생산 전면중단
2021년 품귀에 리스크 드러나
석화특별법에는 ‘의지’안보여
업계, 요소산업 포기한 정부가
석화도 접을 수 있을거라 우려
석화 처방 ‘스페셜티 전환’뿐
정밀화학산업 키워야 하는데
화평·화관법이 걸림돌 될수도
한국 석유화학산업이 전례 없는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 글로벌 수요 둔화·중국의 과잉 증설·에틸렌 스프레드 악화 등의 대외 여건 악화는 물론 국내에서도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비싸게 책정한 정부의 정책 환경과 환경오염 산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현재 석화산업 위기의 본질로 꼽힌다.
한국 산업사의 출발점은 사실상 석화산업이었다. 1960년대 기초화학인 비료산업을 기반으로 중화학 공업이 성장했고, 정유·석화는 수출산업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환경과 에너지 문제가 부각되면서 제조업, 특히 석화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급격히 악화됐다. ‘환경을 해치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산업’이라는 낙인이 씌워졌고, 그 결과 기초산업을 전략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관점은 점차 사라졌다.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개인 연구실에서 만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요소 생산 중단 사례는 이런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면서 “경제 논리에 따라 국내 생산을 포기하고 수입에 의존했지만, 2021년 발생한 요소수 사태를 통해 공급망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석화산업을 포기한다면 제2의 요소수 사태는 불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석화산업을 둘러싼 논쟁은 한 업종의 존폐를 넘어, 한국 제조업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문제다. 기초 소재 산업이 무너지면 그 위에 쌓인 모든 산업도 함께 흔들리기 때문이다. 석화산업에서 이미 고부가가치(스페셜티)로 전환을 마친 미국과 일본도 여전히 요소를 생산하며 기초 소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 이 교수의 의견이다.
―석화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이 석화산업의 실질적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석화 특별법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화학산업을 포함한 석화산업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법에는 석화산업이 위기에 처한 이유가 뭉뚱그려 나열돼 있지만 석화산업을 죽이지 않고 살리겠다는 입장이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다. 업계는 정부의 ‘특혜를 주겠다, 지원하겠다’는 목소리를 믿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조정안 마련에도 진통이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석화산업을 끝까지 끌고 가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정부에 지원 방안을 먼저 결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기업들이 구조조정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먼저 제안하라는 입장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먼저 산업을 확실하게 살리겠다는 시그널을 준다면 기업들은 그에 따라올 것이다. 또, 석화산업 기술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정책·경제 전문가들의 목소리만 반영된 것도 문제다. 석화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플레이어가 참여해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정부는 물론, 업계도 그런 고민 없이 부수적인 산업용 전기료 인하에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석화업계가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된 이유는.
“바로 요소 생산 중단에 따른 요소수 사태 때문이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 화학산업이 비료의 근본이 되는 요소에서부터 시작을 했는데, 그 요소 생산을 2012년에 전면 중단해버렸다.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우리가 그 충격을 못 느꼈다. 정부가 요소 생산을 중단시킨 가장 중요한 논리는 요소산업이 환경적으로 문제가 많고 에너지도 많이 쓰는 공해산업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에서 값싼 요소가 다량 생산되던 시기였고, 중국산 요소를 수입하면 된다는 것 또한 요소 생산 중단 이유였다. 그런데 2021년 느닷없이 요소수 사태가 터졌다. 당시 정책·경제 전문가들은 요소 수입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요소 수급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요소 공급 상황은 굉장히 불안한 상태이다. 석화업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비료·요소산업도 포기한 정부가 석화산업도 포기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산업용 전기료 인하는 부수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사실 산업용 전기료가 가정용보다 비싸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산업용 전기료가 오른다는 것은 최종 제품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뜻이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산업용 전기료가 가정용보다 낮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의 문제다. 산업용 전기료는 기업을 도와주기 위해서 싼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산업용은 송전 과정에서 가정용과 비교해 손실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공급비용이 낮다는 것이다. 산업용 전기료가 가정용보다 비싼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부수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국내 석화산업을 위한 핵심 처방은 무엇인가.
“처방은 단 하나다. 스페셜티 전환이다. 유럽이 기초·범용 화학에서 스페셜티로 전환하는 길을 걸어왔고, 미국과 일본도 구조조정을 했다. 나프타분해시설(NCC) 수준의 석화산업은 중동 국가도 하고 동남아 국가들도 다 하는 것이다. 이에 기초·범용 부문을 내수기반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축소하고 나머지는 선진국들이 했듯이 스페셜티로 업종을 바꿔야 한다. 다른 이름으로 말하자면 정밀화학산업, 이 분야를 키워야 한다. 정밀화학산업으로의 전환은 업계에서 1980년대부터 나온 이야기다. 하지만 기업들은 기초·범용 제품으로 돈을 벌기 쉬웠기 때문에 그동안 스페셜티 전환에 급하게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스페셜티로는 매출 물량을 채울 수 없다는 우려도 있는데, 우리는 이번 기회에 전환기를 견뎌내야 한다. 그동안 공장 시설을 짓기 위한 자본투자를 해왔는데, 이제는 기술투자로 영역을 바꿔야 한다.”
―기초·범용 부문은 어느 정도를 남기고 스페셜티로 가야 하는가.
“산업현장에서 결정할 일이다. 그 부분에 정부가 개입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정부에서 270만∼370만t을 감축 목표로 정한 것은 임기응변으로 제시한 목표일 뿐이며 이 숫자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잘못 해석한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정말로 내수를 지키기 위한 규모냐는 것은 기업들이 학습을 해가면서 배울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 감소 및 지역경제 위축 이슈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큰 공장만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도 대규모 공단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에서는 스페셜티 전환을 위한 구조조정을 지역균형발전에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대산과 여수, 울산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소규모 스페셜티 공장을 만들 수 있다. 스페셜티는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공장이 클 필요가 없다. 기업들의 공장 이전에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게 된다면 공장을 따라 인력이 이동하면서 오히려 지역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스페셜티 전환에 있어 잠재적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다. 사실상 석화산업 퇴출법이다. 유럽의 화평법인 ‘리치(REACH)법’을 벤치마킹했는데 잘못 가지고 왔다. 화평법 1조에는 법의 목적을 환경 보전과 국민 안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리치법의 1조에는 환경 보전과 국민 안전 외에도 온라인 유통망 확충, 화학산업의 진흥이 법의 목적으로 들어가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놓친 것이다. 또, 화평법의 핵심 내용은 위해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정부에 등록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 비밀 유출 문제로 화학물질 정보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공개를 하지 않는다. 화학물질의 위해 가능성을 정부 금고 속에 넣어놓으면 국민이 안전해지고 환경이 깨끗해진다는 논리가 만들어져 버렸다. 석화산업이 스페셜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런 화평법과 화관법이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본다. 기업들은 새로운 석화물질 개발을 위해 개발 초기 단계부터 정부에 상당한 비용을 내면서 물질 정보를 등록해야 한다. 새로운 석화물질 개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고, 새로운 공장을 짓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연말로 구조조정안 제출 시기를 정한 것에 대한 평가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시간을 무한정 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시간을 끌다 보면 여러 기업이 한 번에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사실 석화산업 문제가 불거진 것은 길게 보면 20년 정도, 짧게는 4∼5년 정도다. 그동안 기업들이 충분히 준비했을 것으로 본다. 기업들이 그동안 스페셜티 전환에 대한 준비나 고민이 없었다면 희망이 없다고 본다.”
양자화학·비선형 분광학 전공… 실험 중심 화학계서 드문 ‘이론 화학자’
■ 이 명예교수는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실험 중심인 화학 분야에서 ‘양자화학’과 ‘비선형 분광학’을 전공한 보기 드문 이론 화학자다.
활발한 언론 기고와 발표를 통해 과학계와 에너지업계의 정책 조언에도 힘써온 인물이다. 이 교수는 그간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다수의 과학서적을 번역하기도 했다.
특히 2004년에 번역 출간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 분야 스테디셀러 중 하나이며 자신의 대학원 지도교수인 로알드 호프만 미국 코넬대 교수의 저서를 번역한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는 많은 대학에서 신입생이 읽어야 할 필독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울러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신문·잡지 부문, 2004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2008년) 등을 수상한 바 있다.
△1954년생 △서울대 화학과 학사·석사 △미국 코넬대 이학박사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서강대 화학과 교수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운영위원장 △대한화학회 회장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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