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美 주도 국제질서 저문 2025년

트럼프 관세 압박 잘 대응한 李

대북 문제엔 자주파 논리 고수

 

實效 상실한 남북비핵화 선언

집착시 중국에 역이용될 우려

북핵 위협 막을 실질 대책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세상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2025년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이어진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진 해로 기록될 것이고, 한국과 일본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엔 고율의 관세 협박에 대미 투자를 강요당한 악몽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트럼프 1기 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이 돌아왔다”며 반전을 시도했지만, 트럼프 2기 출범으로 그 정당성은 부정당했다.

트럼프 이후에도 마가(MAGA) 강경파들은 제2, 제3의 트럼프를 권좌에 올리려 할 것인 만큼 미국 우선주의는 국제질서의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동맹과 국제기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로 복귀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 만큼 국가 생존을 위해선 미국 주도의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상식으로 간주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국가 안보와 경제를 최우선에 놓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집권 후 최대 관건이던 ‘트럼프 관세’를 비교적 슬기롭게 풀었다. 지난 6월 취임하자마자 트럼프식 관세 전쟁에 내몰렸지만, 경주 아태경제협력체(APEC) 행사 주최국이라는 홈그라운드 이점을 활용, 버티기 작전을 벌였고,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선에서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췄다. 협상 타결 후 이 대통령이 “비자발적 협상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힘은 버티는 것”이라고 밝힌 데선 국정 최고 책임자의 고뇌가 느껴진다. 보수 대통령도 견디기 어려웠을 미국의 압박을 국익 우선 결기로 버틴 덕분에 트럼프가 경주행 직전 타결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 대통령이 대미 관세 협상 때 보여준 실용적 결기는 국가 안보 문제에서도 견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핵에 대해선 구태의연하게 자주파 논리를 앞세운다. ‘핵 없는 한반도’ 주장이 대표적이다. 8·15 경축사 때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라고 한 데 이어 지난 2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 때도 같은 주장을 했다. 3일 외신기자 회견에서는 “핵 없는 한반도,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이 합의한 대원칙”이라며 “벗어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신냉전 시대가 열렸는데 이 대통령이 30여 년 전 탈냉전기 때 합의된 남북비핵화 공동선언에 집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북한은 러시아 지원에 힘입어 핵무기를 고도화하고 있다. 화급한 대응책은 뒤로한 채 한가하게 핵 없는 한반도를 얘기하는 것은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쳐야 한다”는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의 망상적 주장을 연상시킨다. 북한의 핵 개발로 남북비핵화선언은 휴지 조각이 됐는데도 그것을 고수하겠다는 것은 안보 포기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에 대해 “핵 없는 한반도는 미래의 어떤 상태를 말한다”면서 “정부의 북한 비핵화 목표는 유효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인 만큼 먼 미래의 상태를 꿈꾸듯 말할 게 아니라 당면의 위협에 대한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핵 없는 한반도론이 중국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입각해 미국의 핵우산까지 문제 삼는다.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나 전략무기 전개까지 배제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중국에 역이용당할 위험도 있다.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NSS)’에는 미국이 동맹국 유사시에 관여를 최소화하겠다는 기류가 역력하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 후 공동성명엔 ‘한국이 재래식 방위를 주도한다’고 명시됐다. 핵이 없는 한국이 핵으로 협박하는 북한의 도발을 전담할 때 어떻게 될지는 불문가지다. 요즘 미국 학계에선 북·중·러의 핵 팽창에 대비해 한국과 일본, 캐나다, 독일 등 미국 동맹국들의 핵 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독재국의 핵 협박을 막기 위해 비확산 원칙에 선택적 예외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북한 비핵화 요구 대신 한반도 비핵화론을 펴는 것은 세상 변화에 눈감은 채 실효(實效) 상실 문건을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무지몽매함을 드러내는 것이거나, 아니면 북핵을 묵인하면서 대화를 구걸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어느 쪽이든 대한민국 안보엔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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