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李, 생중계 부처 업무보고 파장
국정 장악 자신감 여과 없이 표출
통치 효율, 정책결정 속도엔 긍정
하지만 독선 독주 땐 국정 사달
김현지·백해룡 사례가 대표적
내부 견제 작동 않으면 난맥상
“공개적으로 국민이 지켜보니까 스트레스받는 분들이 많았다는데… 생각보다는 재미있을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한 말이다. “얘기 편하게 하세요”라고 하지만, 공직자들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대통령이 무제한 질문권을 쥐고 있다. ‘편하게’는 역설적으로 압박이 된다. 이 대통령의 발언과 태도가 더 주목을 받는다. 파문을 낳은 게 한둘이 아니다. “환빠(환단고기를 주장·연구하는 사람들)를 아느냐”(동북아역사재단)는 황당 질문부터 “아는 게 없다”(인천공항공사)는 면박과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하라”(보건복지부)는 경고에다, “박수 한번 쳐주시라”(식품의약품안전처)는 칭찬까지 냉온탕을 종횡한다.
시장·도지사 경험에서 체득한 공무원 다루기 신공 차원이 아니다. 불쑥 내던지고 뾰족하게 말하는 장면들을 이어놓으면 ‘원맨쇼’를 보는 것 같아진다. “넷플릭스보다 더 재미있다는 설도 있더라”고 너스레를 놓기도 했다. 능력 과시이거나 아는 체가 많은 것일 수도 있는데, 분명한 것은 기강 잡기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10·19 사건의 상흔을 성찰 없이 헤집어버리는 것을 보면 그렇다. 더 확연한 건 무대를 장악하는 자신감이다. 취임 6개월이 지나면서 차오른 것으로 보인다. 그간 국정 지지율(한국갤럽)이 54∼64%에서 오르내렸다. 대선 때 득표율이 투표자의 49.42%, 전체 유권자로는 38.9%였다. 그만하면 성공적이라고 여기는 연유일 테다.
통치자의 자신감은 국정에 긍정적이다. 권력의 중심이 분명하니 통치 효율이 높아진다. 정책 결정 속도가 빨라진다. 중장기 과제도 밀어붙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성정도 한몫하는 것 같다. 새벽까지 각 부처와 기관 보고서를 본다는 얘기가 정설이 됐다. 똑같은 해외 순방 중 1호기 안인데, 잔뜩 쌓인 자료를 보는 이 대통령의 사진과 “축구 중계도 보고”라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모습을 대비시킨 쇼츠가 나돌 정도다. 측근 의원으로 장관으로 입각한 인사는 치아가 빠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대통령의 지시 강도와 스트레스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감과 독선의 경계면은 그리 넓지 않다. 자신감이 넘치면 자기 확신이 강해진다. 행정 조직이 챙기지 못한 일을 모조리 찾아내 처리하는 ‘홍반장’ 역을 자처하려 한다. 적시 적소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책임 국정이지만, 면밀한 사전 검토 없는 즉흥적인 지시일 경우 사달이 난다. 관세청 마약 밀수·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백해룡 경정의 사례도 관련 부처에 충분히 고려하라는 정도의 지시였다면 나았을 것이다.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단은 “사실무근이었다”고 했는데, 백 경정은 조서까지 공개하며 부실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영전시켜준 임은정 동부지검장과 뒷배가 돼 준 백 경정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을 보는 세간 시선이 어떠하겠나.
독주 지경에 이르면 비판을 경청하기보다 정치 공세로 치부한다.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문제가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인사다. 물리적, 정보적으로 최단거리다. 공식 직책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비공식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인사 청탁을 놓고 최측근 그룹인 원조 7인회의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남국 전 대통령실 비서관 간에 ‘훈식이 형, 현지 누나’가 등장한 배경이다. 민주당이 김 부속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그토록 막아섰던 이유를 확인해준 셈이 됐다.
레드팀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봉착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참모들은 대통령이 불편하게 느낄 만한 보고를 걸러내기 시작한다.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도, 김 부속실장의 ‘만사현통’ 문제도 실은 내부 견제장치에 달려 있다. 국정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으면 곳곳에서 보내는 위험 신호를 과소평가하기 쉽고, 내부 비판은 충성도의 문제로 환치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권력 효능감은 권력 오작동으로 바뀐다. 대통령의 자신감은 국정의 동력이지만, 조절 장치가 없으면 난맥의 시원이 된다. 윤 전 대통령의 자멸 과정을 보면서 깨달은 사실이지 않은가. “통치자의 가장 위험한 때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한나 아렌트가 강조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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