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m인 경주 감은사지삼층석탑은 높이 81m 또는 67m의 황룡사구층목탑을 비롯해 시내의 평지 사찰에 있던 거대한 탑보다 높이가 훨씬 낮고 작다. 그럼에도 그 사실에 주목하지 못하게 만든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 경주 시내의 거대한 목탑들이 터만 남고 모두 사라져 직접 비교하며 느껴 볼 수 없다. 둘째, 감은사지삼층석탑을 가까이서 보면 높고 육중한 느낌을 받도록 교묘하게 만들어, 이곳을 방문한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게 관찰했다.

감은사지삼층석탑이 높고 크지 않음을 아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서남쪽 100m 지점의 감은로에 서서 동북쪽의 감은사터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된다. 높은 축대 위의 감은사터에 삼층석탑 두 개가 좌우 대칭으로 서 있는데, 아무리 봐도 높고 육중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때 하늘-산-감은사지의 3단계 풍경이 보이는데, 120m가 넘는 큰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13.4m의 삼층석탑이 높고 육중해 보일 리 없다. 이런 3단계 풍경에서는 30m 이상의 거대한 목탑을 세웠어도 마찬가지다.

감은사의 금당과 강당, 회랑, 탑이 높고 웅장하게 보이려면 산이 저 멀리 물러간 허허벌판의 평지나, 아니면 산 위에 만들면 된다. 그런데 문무왕은 과감하게 높고 웅장하게 보이기 어려운 산 밑을 선택했다. 그의 대단한 업적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무덤을 봉분과 부대시설 어느 하나 조성할 수 없는 바닷속 대왕바위(大王巖)로 선택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감은사터는 배산임수의 입지지만 좌청룡-우백호-안산을 설정할 수 없어 풍수의 전형적인 명당은 아니다. 다만, 직선의 진입로를 잘 조성하면 하늘-산-감은사의 3단계 풍경에서 감은사의 건축물이 지나치게 초라해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진입로의 출발점이 정면으로 100m 정도만 떨어지면 된다. 감은사터는 외래적이든 자생적이든 신라에서 양택풍수가 사찰터의 선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초창기의 사례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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