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 타이드, 사상의 썰물과 밀물 - (4) 종교와 AI
교황 레오 14세 “AI 군사적 적용이 분쟁비극 악화”
‘힙불교’ 뜨고 AI목사·AI운세 등 2030에 인기
기성종교에 실망한 사람들에 AI가 새 안식처로
삶의 모호함 해소하고 더 나은 앎을 얻으려는 시도
“지도자들 사이에서 생사에 관한 결정이 점점 더 기계에 ‘위임’됨에 따라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문명을 지탱하고 보호해온 휴머니즘의 법적·철학적 원칙에 대한 전례 없는 파괴적인 배신입니다.”
제도권 종교의 건재함을 상징하는 존재. 교황이 전쟁에서의 인공지능(AI) 사용을 강하게 비판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최근 바티칸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기술의 추가적 진보와 AI의 군사적 적용이 무력 분쟁의 비극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AI가 인간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때, 인문주의를 수호하려는 교황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무기로서의 AI’를 우려한 발언이 아니다. 핵심은 모든 사회·기술적 선택 기준이 ‘인간 존엄성’과 ‘책임성’이어야 한다는 것. 결정을 기계에 위임하는 것은 ‘문명의 퇴보’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챗GPT 등 생성형 AI에 정보와 지식, 판단을 위탁해버린 현대인을 향한 경고지만, 한편 덧없게도 들린다. 힘과 신뢰를 잃은 제도 종교를 대신해, AI가 새로운 영성의 세계를 활짝 열어젖힌 듯 보여서다. 일과를 AI에 털어놓고 위안받거나, 일과 진로 등을 상담받고 결정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때 아주 믿을만한 인간에게만, 혹은 신에게만 하던 행위다. 즉, AI는 인간만이 아니라, 이제 신을 대신할 기세다.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의 욕망으로 탄생한 AI가 ‘AI 데우스’(신이 된 AI)를 꿈꾸는 시대다.
◇‘AI 예수’에 고해성사하고, 신년운세는 ‘AI 무당’에= 16∼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후 많은 사상가나 학자들이 ‘종교의 종언’을 예측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유럽 지역 교회들이 거의 빈사 상태인 것을 생각하면, 종교는 이미 끝났다. 그러나, 2025년의 대한민국을 보면, ‘종교의 시대’처럼도 보인다. 불교는 2030 젊은층에게 ‘힙불교’로 지지를 얻고, 절에서 진행하는 남녀 만남 프로그램은 수백,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동시에, AI가 등장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AI 스님’을 내놓았다. ‘남편과 자주 다툰다’거나 ‘공부하기 싫다’거나 하는 일상생활 속 고민을 입력하면, 불교 경전을 학습한 AI가 이를 바탕으로 답을 내어준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 중 하나가 ‘마애부처님AI’라는 챗봇 상담실이다.
‘AI 무당’ 등 무속 신앙의 자리는 오래전에 AI가 꿰찼다. 사주 해석과 운세 데이터를 학습한 AI 운세 서비스가 2030 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사용자가 정보를 입력하면 운세 풀이 서비스에서부터 성격유형지수(MBTI), 혈액형, 관상까지 분석해 더 정교한 운세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가장 최근엔 챗GPT를 친구처럼, 선생님처럼, 그리고 상담자이자 절대자처럼 여기는 풍조도 생겼다. 이를 종교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세상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과 의문을 동력 삼아 묻고, 해결책을 구하려는 것이 인간이 종교를 찾는 일차적인 이유다. 그러니, 지금 AI는 신까지는 아니라 해도 인간이 만든 종교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한다. 대체될 효용성이 높다. 니체가 기성 종교를 비판하며 그것이 죄책감과 죄의식 등 ‘삶의 짐’을 안겨준다고 했으나, 이 제도 밖 종교는 우리가 가장 갈구했던 자유함과 활기를 제공한다.
캐나다의 목회 연구자 브룩시 카베이는 2008년 출간된 ‘예수, 종교를 비판하다’에서 “사람들이 기성 종교에 실망한 채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진단했는데, 이제 AI가 그들의 ‘갈 곳’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의 원제는 ‘종교의 종언(The End of Religion)’으로, 카베이 역시 제도 종교는 쇠락한다면서도 사람들의 ‘종교적 행위’는 계속된다고 내다봤다. 즉, 교회나 사원이 모두 사라져도 기도와 회개, 용서와 구원, 수행과 수양, 사후세계 소망 등은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 미디어와 종교의 관계를 연구해 온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과학이 세상의 이치를 밝혀줄수록, 이성과 합리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면서 “그런 마음이 다양한 ‘종교적 행위’로 발산되는 현상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이 내놓은 AI 목사 ‘초원’의 월평균 이용자가 15만 명을 넘고, 하루 수천 개의 질문이 올라온다. ‘AI 신당’이 차려지기도 했다. 카이스트 연구팀은 올해 초 AI 점괘를 봐주는 신당을 꾸렸는데, 다수의 참여자가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며 심리적 위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해외에선 독일 바이에른주 성바울교회에서 챗GPT로 개발된 AI 목사가 설교를 해 화제가 됐다. 수염을 기른 흑인 남성이 대형 스크린에 등장해 “현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석 달 만에 중단됐으나 스위스 루체른대의 ‘기계 속의 신’ 프로젝트도 이목을 끌었다. 100개 언어로 소통 가능한 홀로그램 AI 예수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실험. ‘신성모독’ 논란을 빚기도 했다. 기독교교육학을 연구하는 신학자 강성욱은 ‘종교와 AI’에서 대중으로서 종교와 AI의 공통점을 주목했다. 그것은 삶의 모호함을 해소하고 싶고, 더 나은 앎을 얻으려는 것이다. 강 연구자는 “여전히 종교는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은 부조리함과 개인이 마주하는 고통 속에서 희망 또는 원망의 대상으로 소환된다”고 했다.
◇‘종교의 종언’의 종언? …‘AI 데우스’는 종교를 쇄신할까= AI는 기성 제도권 종교를 어떻게 바꿔나갈까. 강성욱 연구자는 이를 “AI는 종교를 망치러 온 종교의 구원자”라고 갈음했다. 하나는 ‘제도로 자리 잡은 종교의 현재 모습’이고, 하나는 ‘제도화되지 않은 종교’를 말한다. 그의 정리를 다시 풀면 “제도화된 종교를 위협할 것처럼 보이는 (종교를 망치러 온) 인공지능은, 종교를 제도 이전 혹은 제도 이후의 종교로 방향 전환시키는 역할(구원자)을 수행할 것이다”다. 기성 종교가 AI와 같은 새롭고 큰 충격으로 스스로 돌아볼 수 있으며, 또한 그러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현실은 ‘AI 문해력’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방향 전환을 위한 사유는 부족한 듯 보인다. 교계에 따르면, 이미 국내 개신교 목사와 전도사 등 목회자의 70% 이상이 AI를 활용해 설교문을 작성한다. 이에, 류영모 한소망교회 원로 목사가 주축이 된 ‘나부터포럼’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효율을 위해 사용하지만, 영적 진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를 제시하겠다는 것. 발 빠른 대처는 돋보이지만, AI 설교를 들어야 하는 ‘인간’에 대한 고민이 빠져 아쉽다. 그만큼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리라.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AI가 아니라 종교가 지닌 본질적 고민을 더욱 깊게 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인간·인간다움·인간성이 무엇인지를 사유하지 않으면 제도 종교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경고했다. 또, “AI를 기반으로 최근 무속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위협으로만 여기지 말고 ‘종교성의 회복’ ‘종교적 행위’의 확산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니체·헤겔 등 주장한 초월적 가치의 붕괴… 인식의 최고 단계, 종교서 철학으로 변화
■ 종교의 종언
‘종교의 종언’은 처음 신앙의 소멸이나 종교의 폐기를 뜻하는 급진적 선언이었다. 16∼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이성과 과학이 확산되며 종교는 미신적 세계관으로 간주됐다. 이후,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는데 이는 신앙의 소멸이 아니라 초월적 가치의 붕괴를 알린 것이다. 헤겔도 ‘종교의 종언’을 고했는데, 이는 종교가 역사적 역할을 다했다는 뜻이다. 인식의 최고 단계가 종교에서 철학으로 넘어갔다는 의미다.
시간이 지나며 ‘종교의 종언’은 의미를 확장해, 오늘날 이는 제도·권위·교리 중심 종교의 영향력 약화를 가리킨다. 동시에 인간의 의미 추구와 윤리적 질문은 여전히 남아, 종교적 기능이 철학·심리학·정치 이념·영성 담론 등으로 분산·변형되고 있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즉, 종교의 죽음이 아니라 형식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 참고
호모 데우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 이후 내놓은 저작. AI와 유전공학, 종교, 문화 등의 흐름을 통해 미래 사회가 인본주의 이후 어떤 윤리적 선택과 위기를 맞이할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예수, 종교를 비판하다
예수를 종교에 대한 가혹한 비판자로 해석하는 책. 목사인 저자는 인간 현실의 산물인 종교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며, ‘종교를 뒤엎는 영성’에 대해 논한다.
박동미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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