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일이다. 한 참모는 대통령에게 아들 문제에 대해 직언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본관 집무실을 찾았다. 몇 번이나 굳게 마음을 먹고 갔는데도 집무실 입구에서 책상까지 걸어가는 동안 점점 의지가 약해졌다고 한다.
결국, 집무실이 원체 크고 위압적인 분위기여서 포기했다고 한다. 예전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들이 일하는 비서동은 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정도로 멀어서 대통령을 만나러 가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 때는 먼저 부르지 않으면 비서실장이라도 가기가 힘들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도 대통령의 위치를 제대로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본관에 근무하는 부속실장이 최대 실권자로 ‘문고리 권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 때는 소통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동에 설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불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선하자마자 공약대로 인수위 시절에 청와대를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했다.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는 바람에 여러 부작용이 있었지만, 그래도 국민은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 공감해 비판 여론이 높지는 않았다. 윤 대통령은 용산 이전 직후 매일 출근길에 ‘도어스태핑’을 하며 소통하는 노력도 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불편한 질문이 쏟아지고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자 돌연 도어스태핑을 중단하고 기자들이 대통령 출근 모습을 볼 수 없도록 아예 벽을 만들어 버렸다. 소통을 위해 용산으로 옮겼는데 되레 격노만 남발하는 최악의 불통 대통령이 됐다. 이곳에서 12·3 비상계엄까지 선포하는 바람에 이재명 대통령은 3년 7개월 만에 청와대 복귀를 선언하고 12월 중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청와대의 위치가 풍수지리상 좋지 않아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불행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권력을 잡고 난 이후 참모나 언론의 쓴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나만 옳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비롯됐다. 이 대통령은 임기 내에 세종시로 이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소통을 강화하고 국민에게 투명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취지에서 업무보고도 생중계 속에 받았지만, 논란만 키웠다. 문제는 공간이 아니라 ‘진짜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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