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고문, 前 한국지식재산연구원(KIIP) 원장

형법 제98조 간첩죄 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기존의 ‘적국(敵國)’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단순한 문구 수정처럼 보이지만, 이는 급변하는 국가안보 환경을 반영한 필수적인 조치다.

현행 형법 구조에서는 ‘경쟁국을 위한 간첩행위’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국가 기밀이 해외로 유출되더라도 해당 국가가 법률상 ‘적국’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간첩죄 적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결과, 국가 정보를 해외 기관에 제공하거나 산업 기밀을 외국 세력에 넘기는 등 명백한 안보 위해 행위가 발생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군사기밀보호법 등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법률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 기술 경쟁이 국가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에 더는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 공백은 실제 사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한 외국인이 국가정보원 건물과 미국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촬영하다가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촬영 동기나 정보 활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현행 법체계상 ‘적국을 위한 간첩’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었다. 이러한 법적 사각지대는 정보 기술 발전과 비대칭 위협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국가안보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반면, 미국·독일·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주요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외국·외국인·외국단체’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기밀·산업정보 유출은 군사안보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적 위협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 스파이 행위법’(Espionage Act)은 특정 ‘적국’ 여부와 무관하게 외국을 위한 정보 제공을 폭넓게 처벌하며, 독일과 프랑스 역시 산업스파이와 국가 정보 유출을 모두 ‘대외적 위해행위’로 포괄한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법체계를 현대화하는 과정이다.

특히 이번 형법의 간첩죄 조항 개정은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 보전 차원에서도 필수다. 인공지능(AI)·반도체·우주·방위산업 등 핵심 전략 산업의 기술은 이미 군사 기밀과 산업 기밀의 경계가 모호하다. 경쟁국이 이런 기술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그런데도 현행 형법 구조는 산업 기밀 유출을 ‘경쟁적 스파이 활동’으로 보지 않아 처벌 수위가 낮고 예방 효과도 제한적이다.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확대하는 것은 정보 활동의 실질적 위협을 기준으로 처벌 체계를 재설계하겠다는 의지다. 이는 기존의 ‘냉전형 간첩 개념’을 넘어서, 국가정보·산업정보·디지털 정보가 총체적 안보위협이 되는 신(新)안보 환경에 부합하도록 법체계를 현대화하는 조치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안보 위협은 군사적 충돌뿐 아니라 드론·사이버 침투, 산업 기술 절취, 정보전 등 더욱 다층적이다. 개정안은 이러한 위협에 보다 실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자국 기술과 국가 기밀을 전략적으로 보호하려는 국가적 선택이기도 하다.

간첩죄 개정안은 특정 정치적 견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 기술주권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기반이다.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나라는 정보·기술 안보 체계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국가안보와 산업안보는 분리될 수 없으며, 변화한 안보 환경에 맞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고문, 前 한국지식재산연구원(KIIP) 원장
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고문, 前 한국지식재산연구원(KIIP)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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