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유죄 자백과 같은 尹 법정 진술

“계엄 선포만 해”… 선포가 효력

질서 유지用 땐 경비계엄 타당

 

尹 “경고성 계엄은 내란 아니다”

헌재는 “국회 병력 투입은 내란”

1심 판결, 헌재 결정 기속 불가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법시험 9수(修)는 한때 ‘뚝심과 집념’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어떤 법률이라도 끝까지 파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미지로 새겨졌다. 시험 준비 대신 지인들의 상가(喪家)를 지키거나 친구 결혼식 때 함을 날랐다는 미담까지 곁들여졌다. 그러나 내란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이유가 다른 데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법률가로서 기본 개념조차 혼동하는 발언들이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은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증인신문에서 “계엄은 선포만 했고, 실행은 없었죠”라는 질문을 던졌고, “상황실도 설치되지 않았고 정밀한 계획이나 실제 진행된 게 하나도 없었다”는 답이 돌아오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증인 퇴장 때 방청석에 있던 친윤 지지자들에게서 박수까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 장면은 무죄의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유죄의 자백에 가깝다. 헌법 제77조에 따라 계엄은 ‘선포’되는 순간 법적 효력을 지닌다. 계엄은 선포 따로, 실행 따로의 따로국밥이 아니다. 헌법재판소 역시 지난 4월 “계엄이 단시간 내 해제되었다 하더라도, 계엄 선포로 탄핵 사유는 이미 발생했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증인신문 때도 마찬가지다. 체포 대상 명단이 논란이 되자 “누구를 잡으라는 말이었느냐”는 반문에 윤 전 대통령은 엉겁결에 “반국가단체”라고 했다. “이재명 야당 대표·우원식 국회의장·한동훈 전 여당 대표가 반국가 사범이냐”고 되묻자 할 말을 잃었다. 무엇보다 체포 지시 존재를 자인한 셈이 됐다. 국회에 계엄군 투입 이유를 “질서 유지”로 둘러댄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그렇다면 그냥 경찰을 넣으면 되지 거기에 왜 군이 들어갑니까”라고 반박했다. 질서 유지 목적이라면 헌법 제77조 제2항에 나오는 경비계엄으로 충분하다. 군이 행정·사법까지 총괄하는 비상계엄은 헌법 정신에 비춰 봐도 과도하다.

내란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 측 변론의 핵심은 “특검이 2시간짜리 ‘경고성 계엄’을 내란으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형법은 내란을 ‘국토 참절이나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경우’로 정의한다. ‘국헌 문란’에 대해서는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의 권능 행사를 강압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한 국헌 문란이라고 판시했다. 사실상 내란의 구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귀연 재판부가 아무리 진보 진영에서 ‘친윤’이라 손가락질해도, 헌재 결정을 정면으로 거스를지는 미지수다. 헌법재판소법 제47조에 따라 헌재의 결정은 모든 법원의 재판을 기속(羈束·강제로 얽어맴)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귀연 재판부는 헌재 결정이 내려지기 전인 지난 3월 7일, 구속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해 윤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하는 이례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검찰 지휘부는 즉시항고를 포기했다. 이에 대해 문형배 전 헌재 소장은 “법리상 의문이 크고, 누가 봐도 의심스럽다”고 공개 비판했다. 다시 한 번 지귀연 재판부가 파격적 선택을 할지는 의문이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은 선포만 했고 실행은 없었다” “질서 유지를 위해 국회에 군을 투입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판결을 내리는 순간, 특검이 헌재에 재심을 청구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수순이다. 헌재가 최종적인 헌법 해석 기관인 이상, 불가피한 조치다. 엘리트 판사 코스를 밟아온 지귀연 재판부가 무리하게 헌재 결정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헌재의 114쪽짜리 결정문의 첫 문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한다. 그러고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비상계엄으로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혼란을 야기했다’며 8 대 0 전원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 헌재 결정문도 안 읽어본 모양이다. 이미 헌재가 탄핵한 진술들을 내란재판에서 반복하고 있다. 형사재판을 정치 재판으로 변질시키려는 분위기다. 제 발등을 찍으며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는 불리한 진술도 적지 않다. 사시 9수를 하고 검찰총장까지 지냈다지만, 윤 전 대통령이 진짜 법률 전문가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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