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윤석화 ‘나뭇잎 사이로’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노래를 듣는 기분은 어떨까. 더구나 목소리의 주인공이 40년 지기 친구라면 말이다. 내 느낌은 이랬다. 이건 한 편의 연극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앞에 가지런히 놓인 꽃들. 그 익숙한 미장센(mise-en-scene) 사이로 걸어 들어가 꽃 한 송이를 추가로 배치하며 그날 내가 흘린 방백을 이제 나는 담담히 기록한다.
친구와 나의 인사는 관객이 있든 없든 늘 비슷했다. 한마디로 ‘연극적’이었다. 안면을 튼 후부터 줄곧 서로를 ‘친구야’라고 불렀다. 누구랄 것도 없이 아무튼 먼저 입을 연 사람의 대사는 일정했다. “친구야 너는 어찌하여 그리도 바쁜 척하느냐” “알면서 왜 묻느냐. 바쁜 게 기쁜 거 아니더냐” “맞는 말이로다. 안 바쁘면 적막하니 친구야 살아있을 때 바쁘게 움직여보자” 주거니 받거니 이런 실없는 대화를 여러 번 목격한 사람 중에는 연극배우 박정자 씨도 계시다. 친구의 기쁨을 한결 높이고 친구의 슬픔을 한사코 어루만진 분이다. 우리의 재롱을 다정히 인내해주신 대배우는 장례식장에서도 끝까지 조역을 마다치 않았다.
친구와 나의 만남이 늘 연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극적인 순간도 있었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쓸 참이다. 내가 ‘스타 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를 연출할 때다. 자주 벌어지는 건 아닌데 촬영 당일 주인공이 펑크를 내는 일이 있다. 그야말로 불상사다. 그날은 동방사회복지회에서 위탁모가 입양아를 임시로 맡아서 돌보는 내용인데 원래는 배우 황신혜가 그 역할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일 아침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일정을 연기해달라는 비보(?)를 접하게 된 것이다. 미루면 방송에 차질을 빚는 위기의 순간에 나는 전광석화(윤석화)처럼 이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야 어디냐”
초연을 앞두고 친구는 막바지 리허설에 여념이 없었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연출을 맡아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며 수정해주고 있었다. 염치는 주머니에 넣고 나는 틈새를 노려 그 바쁜 친구에게 허겁지겁 달려온 이유를 털어놓았다. 그 기막힌 타이밍에 코러스가 둘 사이에 이런 소망을 노래로 던져주었다. ‘이제 저에게 보여주세요(And it’s me you need to show) 그대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How deep is your love)’
촬영을 무사히(간신히) 마치고 깊은 밤에 통화를 했는데 뜻밖의 고백을 들었다. “친구야 도무지 난 잠을 못 잘 것 같구나” 뮤지컬 흥행 고민이나 추가 노동 푸념이 아니었다. “내가 잠깐 안아준 어떤 아기의 간절한 눈빛이 이상할 정도로 계속 나를 따라다니는구나.”
영화로 만든다면 자막은 ‘20여 년 후’쯤 되겠다. 영정 앞에서 한 젊은이를 보듬으며 문상객이 말을 붙인다. “나 엄마 친구야” 더없이 잘 자란 아들과 엄마 신세 많이 진 아저씨 사이로 엄마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나뭇잎 사이로 파란 가로등 그 불빛 아래로 너의 야윈 얼굴’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원곡 조동진 ‘나뭇잎 사이로’)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조동진의 다른 노래로 화답했다. 이 노래 역시 친구가 생전에 커버한 곡이다.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넌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조동진 ‘제비꽃’)
나이가 드니 문자 보낼 때 실수를 가끔 한다. 얼마 전엔 ‘편한 시간’ 알려달라고 한다는 걸 ‘변한 시간’ 알려달라고 보내서 웃음을 샀다. “친구야 변했느냐. 너는 어찌하여 말 한마디 없느냐” 연극이 끝나면 죽은 사람도 일제히 살아나 관객에게 인사한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오래된 친구도 꼭 그럴 것 같아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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