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 24일, 정부가 기세 좋게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정부 능력을 보게 될 것”이라 큰소리치며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 22% 감면’ 카드까지 꺼냈다. 국민연금 환헤지까지 가동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1449.8원으로 33.8원이나 떨어졌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인터넷 투자 커뮤니티에선 오히려 ‘달러 저가 매수 기회’라는 입소문이 퍼졌다. 환전 수요가 몰리며 일부 은행 지점에선 100달러 지폐가 동나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과 달리, 더는 애국심에 기댈 수 없는 세상이다.

해외 주식 양도세 감면은 양날의 칼이다. 정부는 이미 2022년 10월,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환율이 1440원까지 치솟았을 때도 이 카드를 만지작거린 바 있다. 당시에도 “고육지책이지만 제한적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차가운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다 이번엔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만만치 않다. 해외주식에는 혜택을 주면서 내년부터 국내 증권거래세를 0.2%로 인상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란 것이다. 세수 감소라는 현실적 부담도 있다. 지난해 귀속 해외주식 양도소득세수는 2조7000억 원에 이른다.

환율 문제는 경제를 넘어 정치 이슈로 번졌다. “국민 재산 7%가 날아갔다” “국가 경제 전반에 위기가 현실화됐다”. 지난 2월 계엄 후폭풍으로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을 당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이제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그때보다 환율이 더 높은데, 지난 180일간 이 대통령은 단 한 번도 환율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직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총력전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국민연금 환헤지나 해외 주식 양도세 인센티브는 단기 대증요법일 뿐, 경제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근본처방이 될 수 없다.

지금의 고환율은 ‘정부가 경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불신의 표출이다. 소비 쿠폰 등 재정 살포로 통화량이 넘쳐나고,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최장 기록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환율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재정 감축과 기준금리 인상 같은 정책 수단도 테이블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정부가 쓴 약도 들이켜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시장 심리를 돌려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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