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논설위원
올해 한국 바둑계에서 모처럼 이창호 9단(50)이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지난 1일, 입단 이후 39년 만에 스승인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을 제치고 최다승 신기록(1969승)을 세운 것이다. 말 그대로 제자가 스승을 넘은 ‘청출어람’이다.
이 9단은 올해 52승을 올렸다. 인공지능(AI)에 빗대 ‘신공지능’으로 불리는 새로운 바둑왕 신진서 9단 다음으로 승률 2위다. 내년엔 2000승 돌파라는 기념탑을 세울 것이란 전망이다.
이 9단은 전성기에 중국 기사들에겐 ‘넘사벽’으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얼마 전 영화 ‘승부’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최대 무기는 끝내기였다. 박빙이거나 불리한 바둑을 끝내기로 반집·1집 반 등의 역전승으로 뒤집은 사례가 비일비재해, 신산(神算)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쾌속 행마를 앞세워 한·일·중 3국의 강자를 압도해, 영원할 것 같았던 조 9단의 바둑 천하를 무너뜨린 것도 바로 끝내기였다.
이 9단은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 17회나 된다. 은퇴한 이세돌(14회), 신진서 9단(9회)을 포함한 전 세계 프로기사를 통틀어 역대 1위다. 그렇지만 국내 대회까지 합한 통산 우승 횟수에선 142회로, 조 9단(162회)엔 여전히 못 미치는 2위다. 조 9단이 국내 대회를 모두 휩쓸어 ‘전관왕’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결과다. 사실 조 9단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지금처럼 국제 대회가 많았다면 세계대회 우승 횟수도 크게 늘었을 게 분명하다. 이 9단이 앞으로 계속 신기록을 써 나갈 통산 승리대국 횟수와 함께, 조 9단의 이 기록도 당분간 경신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기록은 깨지게 돼 있다. 조 9단과 이 9단의 대기록도 지금 국내외에서 승승장구하며 우승 횟수를 늘려가는 신진서 9단이나, 폭풍 성장하고 있는 꿈나무들에 의해 언젠가는 경신될 게 분명하다. 아무리 푸른 나무라도 1년을 못 가 꽃과 잎이 떨어져 새롭게 출발하고, 서슬 퍼런 칼을 휘두르는 철권 권력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0년을 못 가는 법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세대교체는 이 세상에서 불변의 이치다. 이를 통해 혁신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권력욕에 집착한 나머지, 보편적인 질서에서 자신은 예외라는 ‘내로남불’이 끝이 없다. 헛된 욕망은 화(禍)를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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