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상담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 독자 고민

40대에 접어들면서 예전에는 자주 연락하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좋아하던 영화나 드라마도 더 이상 재미가 없습니다. 외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불과 1년 사이에 제 삶의 감각이 달라진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 우울한 건지, 무기력한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A : 중년기‘생산성 vs 침체감’혼란 경험… 삶 기준 바뀐다는 신호

▶▶ 솔루션

이 시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침체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생산성 성숙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40대에 접어들며 많은 분이 이와 같은 혼란을 경험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시기의 변화는 이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전환에 가깝습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전 생애를 여덟 단계의 심리사회적 발달 과업으로 설명했는데, 중년기에 해당하는 단계의 핵심 과제는 ‘생산성 대 침체감’입니다. 세상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세상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에 최선을 다하던 청년기를 지나 40대부터는 내가 축적해온 삶의 경험과 에너지를 다음 세대나 사회, 혹은 의미 있는 무언가로 전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과제가 충족되지 않을 때 사람은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감과 침체를 느끼게 됩니다.

친구들과 소원해지는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각자의 삶의 무게중심이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자녀 양육에, 누군가는 부모의 노화에, 또 누군가는 자신의 건강과 커리어의 한계에 직면합니다. 즉 정서적 결함이 아니라 삶의 과제가 달라졌다는 신호입니다.

좋아하던 영화가 더 이상 재미없게 느껴지는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즐거움의 핵심이 새로운 자극과 감정의 파동에 있었다면 중년에 우리의 뇌와 마음은 더 깊이 있는 의미와 서사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지구의 위기를 구하는 장대하지만 인공적인 서사, 로맨스처럼 인생의 특정 시기의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내 인생 전체에서의 제한적이지만 현실적인 서사에 더욱 가슴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예전과 같은 방식의 즐거움은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변화를 ‘내가 고장 난 것 같다’고 해석할 때 시작됩니다. 에릭슨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혼란은 침체로 빠져들기 직전의 경고음이자 동시에 새로운 생산성을 모색하라는 신호입니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에 삶의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를 다시 정리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다만 이는 삶이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조용한 신호입니다. 예전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게 됐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기 삶을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전문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