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서점은 개점 이래로 쭉 같은 자리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당신이 유령서점을 오해하기 시작한 것이 언덕 위에서 더 이상 유령서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그건 당신이 어떤 책 한 권을 훔쳤기 때문이다
- 나하늘 ‘유령서점’(시집 ‘회신 지연’)
나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뭐라 불려야 하나. 사장님 하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대표님 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시인 하고 부른다. 머뭇대다 저기요 하는 사람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점은 망설이는 사람들의 장소이다. 이 책이 좋을까, 저 책이 좋을까. 이 책을 살까 말까. 그냥 나갈까 조금 더 있어 볼까. 물론 고민이 서점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점은 결코 선택을 재촉하지 않는다. 설령 아침에 찾아와 저녁이 되도록 책장 앞을 서성대는 사람이 있더라도.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다. 어찌나 오래 망설이고 있던지 나는 그가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말았다.
이윽고 밤이 찾아와 문 닫을 시간이라고 알려주자 그는 ‘내일 아침엔 몇 시에 문을 여나요’ 하고 물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물론 그는 다음 날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서운했을까. 그가 머물러 있는 동안은 그저 텅 빈 서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서점을 면할 수 있었던 탓일까.
이번 크리스마스 주간엔 정말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북적북적한 서점 이곳저곳에서, 사장님, 대표님, 시인, 저기요 사방에서 불러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또 한 달 버틸 만한 매상으로 장부를 쓸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고 서점을 찾아와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그런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무어라 불러도 좋다. 나는 서점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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