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비상계엄 선포 1년이 지나 새해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도 국민의힘은 ‘윤석열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뜬금없고 기이한 계엄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당 지지율이 존립 기반을 흔들 정도로 바닥을 기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쇄신은커녕 ‘윤석열 절연’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대장동 일당 항소 포기,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여권 인사들의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 등 결정적 기회 때마다 ‘윤석열 옹호’로 내년 6·3 지방선거 패배가 확정된 길로 달려가는 장동혁 대표와 주류 지도부는, 말로는 이재명 정권 타도를 외치지만 실제론 이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대 도우미이자 복(福)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장 대표가 최근 당무감사위원회의 한동훈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한 중징계 권고 결정을 옹호하면서 “밖에 있는 적 50명보다 내부의 적 한 명이 더 무섭다”고 했다. 충격적이고 참담한 인식이다. 여야가 상대 당을 ‘적’이라고 불러도 문제인데, 하물며 당내 비판세력을 그렇게 본다면 정치의식 수준을 알 만하다. 2022년 7월 이준석 당 대표를 당원권 정지 징계로 쫓아낸 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 운운하던 것과 똑같다.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하므로 당연히 타도하고 근절해야 할 대상이 된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이 정치적 반대세력을 숙청할 때도 ‘국가의 적’ ‘인민의 적’ ‘혁명의 적’ ‘반동분자’로 낙인 찍었다. 김일성은 6·25전쟁의 패전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박헌영과 남로당 인사들을 ‘미 제국주의자의 스파이’로 몰아 처형했다.

장 대표는 여당의 위헌적인 내란재판부 설치법 통과를 막기 위해 지난 22일부터 23일까지 24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 장 대표는 비장했지만, 필리버스터가 끝나자마자 법안은 어이없이 쉽게 통과됐다. 당 수장이 나섰는데도 소속 의원 107명 중 몇 명만 자리를 지켜 본회의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의석수가 모자라도 지지율이 여당에 앞서거나 필적한다면 민주당이 지금처럼 대놓고 무시하고 일방 폭주하진 못할 것이다. 바닥 지지율을 만들고 필리버스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국민의힘의 진짜 내부의 적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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