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징벌적 손해배상과 논평 반론
언론자유 후순위에 둔 프레임
개별 사설 모여 거대한 공론장
권력의 무오류 전제의 위험성
비판은 실패를 막는 안전장치
언론의 특권 아닌 시민의 권리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언론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줄 몰랐다. 언론 자유란 군사독재 시대의 구호이거나,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부재한 유령 같은 개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이미 확보된 권리라고 믿는 탓에, 이 단어는 종종 진부하고 때로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근에 권력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이 믿음이 착각이자 방심이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방심의 증거가 30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언론·유튜버 등이 불법·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보이면 손해 금액의 최대 5배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 담겼다. 문제는 ‘허위조작정보’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일부 오류가 섞인 기사나 비판적 논평까지 허위로 몰아 권력자나 기업이 일일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 최종 결과에 관계없이 언론의 자기검열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가짜뉴스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주장한다. 가짜뉴스의 심각성을 모르지 않고, 대책은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가짜뉴스 규제’를 상위 명분으로 삼고 ‘언론의 자유’를 그 아래에 두는 위험한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공통의 방향은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디지털 환경에 새로 등장한 위험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이다. 이미 형사처벌·손해배상·정정보도 의무 등이 적용되는 전통 언론과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유튜브와 1인 미디어는 별도의 규제 방식이 필요하다.
민주당 일부 의원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역시 언론 자유의 본질을 건드린다. 개정안은 반론보도 청구권 조항에 ‘사실관계에 관한 내용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추가해 사설·칼럼·논평까지 그 대상으로 확대했다. 신문 사설은 1841년 ‘뉴욕 트리뷴’이 당시 뒤섞여 쏟아지던 뉴스와 의견을 분리해 ‘에디토리얼 페이지’를 만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정정보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사실 보도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한다면 논평은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제시하는 주관적 가치판단으로, 의견 표명은 그 자체로 참·거짓의 증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논평은 공동체와 권력을 향해 책임감 있게 발언하는 자리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신문의 사설은 개별적이지만, 전체가 모여 한 사회의 거대한 공론장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매체 간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하고 교차하는 이 공간에서 시민은 현실을 해석하고 입장을 정한다. 따라서 특정 사설이나 칼럼을 반론보도로 규제하려는 시도는 단순히 한 언론에 대한 제재를 넘어 공론장의 다양성과 긴장을 위축시키는 일이다. 그렇다고 사설과 논평이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에 대한 통제는 국가의 직접 규제가 아니라, 언론 스스로의 자율 규제와 상호 비판을 통해 공론장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가짜뉴스와 혐오 정보의 폐해는 심각하다. 또, 전통 언론의 내부 개선과 개혁도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목소리, 자신들의 뜻과 다른 목소리를 ‘틀렸다’고 규정하고 법을 동원해 막으려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는 데 있다. 이 전제를 바탕으로 언론·사법·선거·분권 같은 장치들이 설계되어 있다.
권력이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는 추상적 덕목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이 장치가 작동하지 못하면 권력의 오류와 오만은 누적돼 결국 무너지게 된다. 이는 공동체 전체에 심각한 피해를 남긴다. 이미 지난 정권에서 우리 모두가 겪은 일이기도 하다.
국경없는기자회가 거듭 강조하듯,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나 기자의 특권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이다. ‘언론 자유를 말해야 하는 시대’는 곧 ‘시민의 알 권리가 위기에 처한 시대’다. 2025년 마지막 날 다시 언론 자유를 말하는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공론장이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새해엔 권력이 조금 더 현명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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