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신춘문예 - 동화

 

아이는 계산대를 흘낏 보더니 샐러드를 집어 가방에 두 개를 넣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 옆으로 돌아왔다.

먹지도 않은 라면을 쓰레기통에 통째로 넣고 편의점을 나갔다.

 

“나도 비행기 타보고 싶다. 기념으로 구름 한 줌 가져오고 싶어.”

아이의 눈빛이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오를 것처럼 투명하게 반짝였다.

“구름을 어떻게 가져오냐. 비행기에서 창문을 열 수도 없는데.”

일러스트=김유종 기자
일러스트=김유종 기자

“딸랑”

오늘도 그 아이가 들어왔다. 나는 컵라면을 감싼 비닐을 뜯지 않고 손톱으로 긁기만 했다.

아이는 컵라면을 골라 계산대로 가지고 갔다. 주인아주머니는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았다. 핸드폰에서는 방송 프로그램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가 값을 치르고 온수기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와 함께 나도 비닐을 벗겼다.

아이가 먼저 뜨거운 물을 부었다. 아이가 비키자마자 나도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일, 이, 삼, 사….”

아이가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물이 컵라면에 표시된 선에 닿을락 말락 할 때 얼른 테이블 위에 컵라면을 올려놓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백팔십 초는 몹시 길었다. 아이를 흘끗흘끗 쳐다봤다. 언제나처럼 아이는 눈길을 주지 않고 숫자만 셌다.

“백팔십.”

아이도 나도 컵라면 덮개를 뜯었다. 그때 주인아주머니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컵라면 같은 슈퍼 가공식품을 매일 먹는 사람은 웰빙 식단으로 먹는 사람에 비해 수명이 십 년 이상 단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면발을 빨아먹었을 아이가 가만히 있었다.

“수명 연장을 위해서는 시금치, 케일, 상추와 같은 녹색 채소와 블루베리, 사과와 같은 과일이 효과적….”

배가 고팠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젓가락으로 꼬불꼬불한 면을 집어 후후 불었다. 면을 입속으로 넣으려는 찰나에 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린 일찍 죽을 거야.”

젓가락으로 잡고 있던 면발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럼 어떡해.”

아이는 냉장 진열대로 갔다. 샐러드를 집어 들었다.

“돈 있어?”

나는 샐러드의 가격표를 가리키며 물었다. 라면보다 훨씬 비쌌다. 아이는 샐러드를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우리는 다시 컵라면 앞으로 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을 바라만 봤다.

꼬르륵 소리는 내가 아닌 아이의 배에서 났다. 아이는 젓가락을 들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소리를 듣고 있으니 입맛이 돌아왔다. 나도 다시 젓가락을 집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둘러 마신 컵라면을 내려놨다. 아이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너 눈 밑이 어두워진 것 같아.”

아이의 컵라면도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넌 얼굴이 더 까매진 것 같아.”

아이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쓰레기통에 빈 용기를 버렸다.

“딸랑”

인사도 없이 아이는 편의점을 나갔다. 학원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니 정말 눈 밑이 새까맸다.

문제집에는 군데군데 답을 적어 넣는 빈 공간이 있어서 낙서할 수 있었다. 상어 입안에 뾰족한 이빨을 빼곡하게 그려 넣었다.

“또 낙서하지!”

선생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어를 그린 종이를 찢었다.

“맨날 문제집에 낙서하고 찢고….”

선생님이 한숨을 쉰 것 같았다. 곧 엄마처럼 내게 소리칠 것 같았다.

“그렇게 비좁은 공간에 낙서하면 답답하지 않아? 수업 집중해서 들으면 낙서 마음껏 할 수 있는 종이 줄게.”

선생님이 하얀 종이를 들고 말했다.

웬일로 아이가 가방을 메고 먼저 편의점 앞에 와 있었다. 나를 보고서는 성큼성큼 다가와 물었다.

“일찍 죽고 싶어?”

“일찍 죽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럼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무슨 말이야?”

아이는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렸다.

“딸랑”

오늘도 아주머니는 핸드폰에 빠져서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컵라면을 골랐다.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대로 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랐지만 나도 컵라면을 고르고 계산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라면에 물을 부었다. 아이는 숫자를 백팔십까지 셌다.

라면을 먹으려는데 아이가 컵라면을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살금살금 냉장 진열대 앞으로 갔다. 까만 가방이 눈길을 끌었다.

아이는 계산대를 흘낏 보더니 샐러드를 집어 가방에 두 개를 넣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 옆으로 돌아왔다. 먹지도 않은 라면을 쓰레기통에 통째로 넣고 편의점을 나갔다.

나는 가만히 멈춰 있었다. 아주머니를 힐끔 쳐다보았다. 여전히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면발이 가득한 라면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종종걸음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아이가 내 손목을 잡아챘다.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앞만 바라봤다. 아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지구 바깥까지 뛰어가고 싶었다. 뛸수록 발은 점점 느려졌지만 두근대는 심장 소리는 그대로였다.

편의점에서 한참 떨어진 공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도둑질은 나빠.”

“알아. 그래도 일찍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도둑이 되는 것보다는 빨리 죽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아이는 가방에서 샐러드를 꺼냈다. 채소 위에 드레싱을 뿌리고 내게 건넸다. 받지 않자 제 입으로 가져갔다.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니 군침이 돌았다.

아이가 다시 샐러드를 건넸을 때는 망설임 없이 받았다. 솔직히 라면이 더 맛있었다. 하지만 라면은 조금 지겨웠다.

방울토마토가 입안에서 톡 터질 때 수명이 일 년은 늘어난 것 같았다. 입안이 시원하고 상쾌했다. 그늘을 만들어 준 나무는 우리의 비밀을 지켜줄 것 같았다.

아이와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편의점을 바꿔가며 만났다. 가장 싼 컵라면을 사고 샐러드나 샌드위치, 도시락을 훔쳤다.

공원 벤치에 도시락과 샐러드를 펼쳐 놓았다. 아이는 제육볶음 양념을 입가에 묻히며 먹다가 물었다.

“너도 급식카드 마음대로 못 써?”

우리가 맨날 가는 편의점 문에도 급식카드 사용 가능이라고 적혀있었다.

“급식카드가 뭔데?”

“급식카드 몰라? 어린이가 밥 사 먹을 수 있는 카드. 급식카드 있으면 햄버거랑 떡볶이 사 먹을 수 있어.”

“완전 좋다! 어떻게 구해?”

“어른이 대신 신청해 줘야 해. 엄마나 아빠, 없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도 될걸?”

머릿속에 떠다니던 떡볶이랑 햄버거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우리 엄마는 절대 해줄 리 없어. 맨날 카드에 겨우 라면 사 먹을 돈만 넣어 주는걸.”

아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말했다.

“우리 아빠도 급식카드에 라면 사 먹을 돈만 남겨줘.”

“급식카드는 어린이가 밥 사 먹는 카드라며?”

“맞아. 그래서 아침마다 아빠가 먹을 햄버거랑 간식 사러 같이 가.”

“넌 안 먹고?”

“응. 난 아빠랑 같이 있을 땐 투명 인간이거든.”

아이가 양상추를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도시락은 데우지 않아서 차가웠다. 제육볶음은 몇 번 씹으니 조금 따뜻해졌다.

원래는 점심만 먹고 헤어졌는데 웬일로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자고 했다.

“안 돼. 학원가야 해.”

“안 가면 안 돼?”

“응. 그럼 컵라면 사 먹을 돈도 안 줄지 몰라.”

“학원이랑 컵라면이랑 무슨 상관이야?”

“엄마가 난 밥 먹을 자격 없다고 했어. 공부 못해서 엄마네 학원에서 가르치기도 창피하대. 그래서 방학하자마자 다른 동네 학원으로 보내버렸어. 학원 빠지면 아무도 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릴지도 몰라.”

“엄마가 학원 선생님이야?”

“원장 선생님.”

“그럼 부자 아니야?”

“반짝이는 물건이 많은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해.”

“부자면서 너한테는 컵라면값만 주다니 너희 엄마 진짜 나쁘다.”

“너희 아빠도 나빠. 급식카드를 다 써버리잖아.”

아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아이가 학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여기서 백일 번 버스를 타고 여덟 정거장 가면 우리 집이야.”

아이가 물었다.

“버스 혼자 타고 다녀?”

“응.”

“대단해. 난 아직 한 번도 혼자 버스 타본 적 없어.”

학원에 거의 다 왔을 때 아이가 새삼스럽게 물었다.

“너 돈 없지?”

“당연히 없지. 아까 편의점에서 썼잖아. 왜 그러는데?”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내일 먹자. 편의점에 조각 케이크 팔잖아. 대신 훔칠 거 하나 빼야 해. 한꺼번에 많이 사라지면 의심할 수도 있어.”

“오늘 먹어야 하는데…….”

아이는 발로 바닥을 비볐다. 오늘따라 이상해서 가만히 쳐다보는데 아이가 말했다.

“오늘 내 생일이란 말이야.”

“왜 그걸 지금 말해! 아까 편의점 가기 전에 말했어야지.”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케이크를 훔쳐서 나오면 걸릴 것 같았다. 돈을 구해야 했다. 우리는 놀이터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학원에서 애들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모두 카드를 사용해서 현금은 없다고 했다. 남은 사람은 선생님뿐이었다. 선생님한테 솔직하게 말했다. 친구 생일인데 케이크 살 돈이 없다고.

선생님이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엄마는 화를 내기 전에 나를 째려보곤 했다. 교실을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나를 붙잡았다.

“빌려주는 거 아니고 그냥 주는 거야. 친구랑 생일 파티 즐겁게 해.”

가만히 있자 선생님이 손에 돈을 쥐여주었다.

놀이터로 달려갔다. 아이는 땡볕 아래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가도 아이는 고개를 내리지 않았다. 아이의 팔을 쳤는데도 그대로였다.

“나도 비행기 타보고 싶다. 기념으로 구름 한 줌 가져오고 싶어.”

아이의 눈빛이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오를 것처럼 투명하게 반짝였다.

“구름을 어떻게 가져오냐. 비행기에서 창문을 열 수도 없는데.”

비눗방울 터지듯 아이의 눈빛이 금세 흐려졌다. 그제야 아이는 케이크를 들고 있는 나를 봤다. 눈이 다시 반짝였다.

“와아!”

종이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윤기가 잘잘 흐르는 망고가 올라간 케이크를 보고 아이의 콧구멍이 커졌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내내 아이는 케이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빵집에서 받은 숟가락을 건네주며 말했다.

“떠먹는 케이크래.”

아이는 케이크를 듬뿍 퍼먹었다.

“으으음!”

아이는 온몸을 흔들었다. 숟가락으로 케이크를 뜨다 말고 물었다.

“넌 왜 안 먹어?”

애초에 숟가락을 하나만 챙겼다. 케이크는 아이에게 주는 내 선물이었으니까.

“네 생일이잖아.”

아이는 케이크를 뜬 숟가락을 내게 내밀었다.

“그러니까 같이 먹어야지. 너 아니었으면 내 생일은 없었어.”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망고 케이크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한 조각 케이크는 별똥별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이는 고개를 들고 다시 하늘을 봤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갖고 싶은 구름이 벌써 저만큼 멀어졌어.”

“많고 많은 구름 중에 왜 저 구름이야?”

“음….”

아이는 한참 생각했다.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사이에 구름은 더 멀어졌다. 아이는 양손을 입술 사이에 모으고 하늘에 대고 말했다.

“곱슬곱슬해서!”

꼭 구름에게 말하는 작별 인사 같았다. 구름을 쫓는 아이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파마머리도 아니고 곱슬곱슬이 뭐야.”

일러스트=김유종 기자
일러스트=김유종 기자

“왜요! 왜 감옥에 가요! 도둑은 내 친구 아빠예요.

급식카드를 훔쳤다고요!

감옥에 갈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니라 그 애 아빠예요!”

 

“비행기 말고 버스 타고 왔는데 구름 한 줌을 잡았어.”

“그걸 어떻게 하려고?”

아이는 빗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나는 놀이터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왔다. 흙 위에 생긴 아이의 그림자 위에 낙서를 했다. 구름머리를 그려주고 손에는 구름이 달린 요술봉을 쥐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발아래에 구름을 그려주었다. 아주 복슬복슬한 구름을. 아이가 두 발을 굴렀다.

“대단해! 넌 마법사야.”

“마법사는 무슨, 그냥 낙서야.”

아이는 구름을 볼 때보다 들뜬 얼굴로 말했다.

“너한테 받고 싶은 선물이 있어.”

“케이크가 선물이 될 수는 없어?”

“응, 같이 먹었잖아.”

아이는 벌써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난 도둑질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럴 줄 알고 난 안 먹겠다고 했잖아!”

“네가 그린 그림이 갖고 싶어.”

아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방에서 선생님에게 받은 종이를 꺼냈다.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하얀 종이였다. 아이는 우리 둘을 그려달라고 했다.

“어떻게 그려줄까?”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어.”

빈 종이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고개를 들어 아이를 볼 때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자꾸 입꼬리를 높이 올렸다.

하늘로 고개를 들어 구름을 봤다.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한 구름은 더 멀어져 있었다. 고개를 내리자 아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아이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마 구름을 보고 있을 거다.

바다 같은 하늘을 그렸다. 우리는 각자 구름으로 만든 튜브를 끼고 헤엄을 쳤다. 우리의 튜브는 구불구불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아이는 그림을 보고 웃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아?”

아이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너무… 너무 마음에 들어. 최고의 생일 선물이야.”

아이가 그림을 가슴에 포개었다.

“아직 안 끝났어. 집에 가서 색칠해서 줄게.”

아이는 두 손으로 그림을 내밀었다.

“내일 꼭 줘야 해.”

집에 가자마자 방문을 잠그고 색칠을 했다. 색연필을 놓고 완성한 그림을 봤다. 아이가 완성된 그림을 보고 뭐라고 할지 기대가 됐다.

아이는 보자마자 그림을 달라고 했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며 말했다.

“밥 먹고 줄게.”

도시락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너희, 딱 걸렸어.”

뒤를 돌아보니 주인아주머니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한두 번 아니지? 지난주에도 도시락 없어졌는데 너희 짓이지?”

아주머니는 부모님 전화번호를 대라고 했다. 우리는 번호를 부르고 꼼짝없이 아주머니 옆에 서 있었다. 아이가 덜덜 떠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한 시간 뒤에 엄마가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나를 흘겨보고는 아주머니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죄송해서 두둑하게 넣었어요. 아이가 어려서 뭘 모르고 한 일이니까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아주머니는 봉투를 들여다보고는 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애 아빠 알아요? 아빠랑 둘이 산다는데 전화해서 제 새끼가 도둑질했다는데 툭 끊어버리데요. 다시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모르는 애예요. 저희 집은 이 동네 아니거든요. 우리 애는 도둑질할 애가 아닌데 아무래도 저 애가 부추겼나 봐요.”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편의점을 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여전히 편의점 안에 서 있었다. 아이와 멀어질수록 아이가 떨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발 학원에서 얌전히 공부 좀 해. 너 때문에 내가 무슨 망신이니!”

엄마에게 잡힌 손이 아팠다.

“동네 창피해서 옆 동네로 보냈더니 도둑질을 해?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손이 부서질 것 같았다.

“아까 걔가 너한테 도둑질하자고 했지? 어린애가 어디서 못된 짓을 배워와서 다른 애까지 끌어들여.”

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목이 따끔거렸다.

“애초에 왜 저런 애랑 어울려서 이 사달을 내니? 저러다가는 감옥에 갇히는 거야.”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멈춰 서서 엄마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왜요! 왜 감옥에 가요! 도둑은 내 친구 아빠예요. 급식카드를 훔쳤다고요! 감옥에 갈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니라 그 애 아빠예요!”

뒤를 돌아 뛰었다.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같은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를 끌고 편의점을 나왔다.

앞만 보고 뛰었다. 멈추지 않고 뛰었다.

“숨이 너무 차.”

아이가 말했을 때 멈춰 섰고 함께 숨을 골랐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든 상관없어.”

아무도 우리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딘지 몰라서 앞으로 걷기만 했다.

꽤 긴 시간을 걷고 또 걸어서 멀리 온 줄 알았는데 엄마가 경찰차를 타고 나타났다. 아이와 함께 도망가려고 했지만 금세 잡혔다.

경찰차를 탄 아이의 몸이 떨렸다. 나는 경찰관에게 말했다. 아이의 아빠가 아이의 급식카드를 뺏었다고. 엄마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네가 사라져서 찾으러 온 것뿐이야.”

우리는 모두 경찰서로 갔다. 경찰관은 엄마가 진짜 우리 엄마가 맞는지 간단히 확인했다. 다른 경찰관은 아이에게 급식카드에 관해 물었다.

엄마는 확인이 끝나자마자 다시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아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었다.

“집에 가야지! 자꾸 고집 피우면 혼날 줄 알아.”

엄마가 우악스럽게 내 어깨를 잡고 말했다. 경찰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내게 귓속말했다.

“다음에는 내가 너희 동네로 갈게. 백일 번 버스 타고 여덟 정거장.”

나는 힘을 뺐다. 엄마는 나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부터는 다시 엄마의 학원에 다녔다. 점심은 엄마와 함께 학원에서 배달 음식을 먹었다. 엄마는 나를 하루 종일 학원에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엄마가 수업하러 들어가면 나는 빈 교실에 혼자 있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만 종일 쳐다봤다.

비가 가늘게 떨어지고 있었다. 백일 번 버스가 멈춰 섰다. 한 아이가 내렸다. 턱을 괴고 있다가 와락 일어섰다. 교실을 박차고 뛰어갔다. 엄마한테 혼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이는 양손을 모아 빗물을 모으고 있었다. 날 보고도 손을 내리지 않았다.

“책에서 봤는데 구름은 비가 된대.”

오랜만에 보는데도 아이는 계속 함께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비행기 말고 버스 타고 왔는데 구름 한 줌을 잡았어.”

“그걸 어떻게 하려고?”

아이는 빗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이제 내 몸 안에 구름이 있어. 나도 둥둥 떠오르면 어떡하지?”

“그럼 나도 널 잡고 하늘로 떠오를래.”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아이는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서 보여줬다.

“급식카드 이제 나만 써.”

“경찰관이 아빠를 데려갔어?”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대신 집으로 찾아와서 아빠를 혼냈어. 그 뒤로 급식카드는 나만 써.”

“아빠한테 혼나지는 않았어?”

“안 혼났어. 투명 인간이잖아.”

아이는 급식카드로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급식카드 사용 표시가 붙어있는 분식집을 들어갔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떡볶이를 먹고 가겠다고 빠르게 말하고 끊었다.

떡볶이는 생각보다 매웠다. 둘 다 습습거리면서 먹었다. 아이는 국물까지 긁어먹고는 물을 연속으로 세 컵이나 마셨다. 아이가 컵을 식탁에 놓으며 말했다.

“내가 생일 밥 샀으니까 이제 선물 줘.”

“내가 그림 가지고 다니는 줄 어떻게 알았어?”

“몰랐어. 진짜 있어?”

나는 가방에서 그림을 꺼냈다. 아이는 입을 활짝 벌렸다. 벌린 채로 다물지 않았다.

“넌 진짜 마법사야.”

하늘로 둥둥 떠오르는 구름을 탄 표정으로 아이가 말했다. 아이가 연필을 꺼내더니 그림을 뒤집었다.

“뭐해?”

“제목 적으려고.”

나는 아이 옆에 가까이 다가가 아이가 쓰는 글씨를 봤다.

아이는 멈추지 않고 내 이름 옆에 나란히 글씨를 더 썼다.

이 윤

래 희

원 성

아이가 종이에서 손을 뗐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씩 웃었다. 내가 그린 그림도 아이가 지은 제목도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백일 번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아이에게 손을 백일 번쯤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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