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신춘문예 - 소설 심사평
신비로운 개성과 안정된 구조, 단단하고 유려한 문장과 곱씹어볼 만한 주제가 장점으로 여겨진 네 편의 응모작이 본심에서 가장 길게 논의됐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소문의 대교’는 네 편 중에서 가장 강한 개성을 드러냈으며 독자가 빈틈을 더듬어보며 여운을 품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환상성을 띤 대교가 충분히 매력적으로 구현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이야기는 채워져야 하는 틈이 있고 그대로 두었을 때 빛나는 틈이 있는데, 꼭 채워져야 할 미스터리가 끝까지 빈 채로 남겨져 종국엔 여운보다 궁금증이 증폭되는 점도 아쉬웠다. 이 소설에 담긴 신비로운 이야기가 그저 한밤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지 않기 위해선 적절하게 채워져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스노볼 스노볼’은 사건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전체적으로 추상성이 아주 짙었지만, 묘하게도 그 점이 차분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소설이다. 도움과 가르침을 주고 싶은 자리에 있으나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 속에 둘러싸인 인물의 심정이 매우 담담하게 그려진 점이 좋았다.
그러나 소설의 중심적인 오브제인 스노볼의 상징성이 흔들림과 반짝거림에서 더 나아간 단계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를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증거가 충분히 나왔는지도 고심되었다. 덧붙여 마지막 문장이 누구에 관한 진술인지 선뜻 공감할 수 없었던 점도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눈길이 머물렀던 작품은 ‘이타적 습관’과 ‘가챠, 가챠’다.
‘이타적 습관’은 돌봄의 이야기로 읽혔다. 근래 들어 많이 등장한 테마이지만, 가족이 아닌 자리에서 돌봄을 수행하며 점차 소외되는 이의 마음을 설득력 있게 차분히 들려준 소설이었다. 소재의 무게를 의식해 이야기를 어둡게만 그려내지 않은 점이 돋보였고, 인물에게서 언뜻 비치는 유머 감각이 빛나는 생기를 부여해주었다. 외국인 노동자와 연대하는 후반부도 서사의 힘을 강화하는 좋은 전개였다.
그러나 한 가지 크게 염려되었던 점은 수연에 대한 화자의 생각이다. 수연의 감정이 질투심으로 귀결되면서 수많은 감정의 스펙트럼이 매우 단조롭게 정리되는 듯했고,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타자의 자리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수연과 그를 대변하는 집단에까지 충분히 가닿았는지에 대한 깊은 의문이 남았다. 만일 이 점을 충분히 숙고한 끝에 이 소설의 나머지 부분에서 작가가 보여준 통찰력이 고르게 잘 표현된다면, 이견의 여지 없이 매우 좋은 소설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끝으로 당선작 ‘가챠, 가챠’는 본심에 오른 세 편의 장점을 모두 흡수하면서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소설이다. 단단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풀어낸 인물들의 이야기가 핍진하면서도 상투적이지 않게 그려졌고,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아 주변 이웃을 둘러볼 줄 아는 이의 깊이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통해 있는 것과 있다고 믿는 것의 차이를 곱씹어보게 된 경험은 살아가면서 놓치게 되는 중요한 질문과 맞닿아 있어 문학의 효용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생활이라는 중력을 꽉 잡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잔물결 같은 파동들을 보여준 ‘가챠, 가챠’는 있는 게 아니라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꿈이 아닐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3000원을 버는 일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다리고 있던 소설이 도착해 매우 기쁜 마음으로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한다.
조경란·김숨·이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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