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정년 앞두고 서랍·서류함 정리
세상 떠난 분들 사진 보며 상념
연구실 가득 찼던 책장 치워도
집착 때문인지 비워지지 않아
이제는 어쭙잖은 책임감 대신
후학들에 자리 내주는 게 사명
34년간 재직해온 모교에서 2월 말 정년을 앞두고 있다. 묵은 살림이라 서랍과 서류함, 구석의 상자와 책꽂이 틈새에서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한구석을 정리하면서도 생각이 많아져 머리가 어지럽다.
진척이 없는 것은 물건 하나하나에 묻은 상념 때문이다. 서랍 속 사진에는 이미 세상에 없는 분들과의 기억이 남아 있다. 상자 하나에 빼곡한 소품들은 묵은 찻잔과 다기, 여기저기서 받은 선물 외에 6개월 머물렀던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에서 주말 벼룩시장과 집 근처 엔틱 숍에서 사 모은 잡동사니들이다.
평생 쓴 몽당붓이 필총(筆塚)을 이루겠고, 욕심 사납게 사 모았던 각종 시전지(詩箋紙)와 화선지도 어마어마하게 쌓였다. 중국 고구려 환도산성을 오르던 길에 수박 팔던 농부에게 사온 와당과 지안(集安)에서 구입한 광개토왕릉 각자(刻字) 전돌 탁본까지 나온다. 베이징(北京) 유리창 서점에서 만나 반갑던 안진경(顔眞卿)의 마고선단비(麻姑仙壇碑) 탁본도 옛 기억을 자극한다. 책상 위 큼직한 산수경석은 예전 시인 권달웅 선생께서 큰 공부를 하라고 직접 가져다주신 수석이다. 돌과 함께 주신 편지가 지금도 받침대 안쪽에 들어 있다.
연구와 무관한 책들을 나눠주려고 꺼내 들면 편지가 툭 떨어지고, 그것 때문에 또 마냥 시간이 간다. 연구실 양면 벽을 이중으로 가득 채웠던 48개 책장 속의 책을 정리하는 일이 가장 골치 아팠다. 지난봄에 먼저 대학 도서관에 없는 책 2500권을 보냈다. 전남 강진 귤동의 윤관석 선생 댁에도 가벼운 교양서적과 옥션 도록, 학술지 등을 정리해서 1000권가량 내려보냈다. 강연차 갔던 경기 남양주 정약용도서관에는 내 책을 포함해 몇백 권을 따로 추렸다. 서화와 전각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은 인사동 고산 김정호 선생 서실로 올려보냈다. 참 오랜 세월 모은 손때 묻은 물건들이었다. 그래도 빈자리는 여전히 태가 안 난다.
지난봄 바깥에 미리 마련해둔 조그만 오피스텔에는 내가 앞으로 가까이 두고 볼 연구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옮겨 두었다. 학교 연구실에 있던 책의 5분의 1밖에 못 들어갔다. 집착을 버리자고 다짐에 다짐을 해도 막상 책 앞에 서면 쓸모가 남은 것 같고, 어떤 책 앞에서는 책과 관련된 기억들이 내 손을 막는다. 이미 나눠준 책 중에 벌써 요긴해져서 아차 싶을 때면 당황스러움이 더 커진다. 이제 학교 연구실에 남은 책장이 4개뿐이다.
각종 소품과 그릇, 문구류들은 책장 하나에 진열해두고 마음대로 가져가게 했다. 그러고도 남은 것은 상자에 담아 바깥쪽에 내두었다. 연초까지는 모두 나누고 버릴 작정이다. 참 많은 것을 품고 이고 살았다. 어떻게 해야 잘 비우고 잘 버릴까? 이게 요즘 나의 화두다. 새 연구실에 들른 아들이 거기에 어느새 빈틈없이 들어찬 책을 보다가 휴 한숨을 쉬더니 혼잣말로 “나중에 이건 또 어떻게 정리하지?” 한다.
마지막까지 남긴 고갱이만 모아 보니, 내가 남은 삶 동안 하고 싶은 공부가 어떤 것인지 보인다. 새 연구실의 책들은 다산 정약용에 관한 것이 가장 많다. 그것도 연구서보다 내가 그간 직접 현장에서 수집한 친필첩의 사진과 복사물을 한 장 한 장 풀칠해서 묶은 자료집들이 대부분이다. 그다음은 요즘 관심을 쏟고 있는 교회사 관련 서적들이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연암 박지원 관련 자료들은 그 옆에서 다소곳이 제 순서가 올 날을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다.
맞은편 서가에는 ‘삼국유사’에 관한 책들과 문장론 자료 묶음, 그리고 차문화사 관련 서적들이 한 자리씩 차지했다. 서탁 뒤편 손 가까운 곳에는 틈틈이 임서하는 서예 법첩들이 세 칸이나 차지했다. 벌써 출입문 뒤편으로 높게 쌓여가는 책들이 겁난다. 버린다면서 계속 새 책을 자꾸 사들이기까지 하니, 내가 생각해도 딱한 노릇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가 텅 빈 연구실을 보고 눈물을 글썽인다. 자기 마음이 이런데 선생님 마음은 어떠시겠느냐고 한다. 나는 ‘뭘’ 하며 웃었다. 인문대 교수 호조회에서 전별 인사를 하자 동료 교수가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액자 하나를 선물로 건넨다. 끌러보니 밤중의 인문관 건물 사진이다. 캄캄한 전체 건물에 4층 두 번째 방 내 연구실에만 불이 밝혀진 사진이었다. 잠깐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예전 학교 근처에 살 때는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고 다시 연구실로 올라오곤 했다. 네 살짜리 아들이 못 간다며 막무가내로 두 팔을 벌려 현관문을 막고 선다. 금방 와서 놀아준다고 달래놓고 연구실에 와서 털썩 앉는데 엉덩이를 무언가가 쿡 하고 찌른다. 뒷주머니를 더듬어 보니, 아이가 놀던 레고 블록 하나가 들어있었다. 아빠가 저와 안 놀아주고 학교로 다시 가니까 뒷주머니에 슬쩍 넣었던 모양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이제 서른네 살이다.
이곳에서 잘 살다가 떠날 때가 되어서 떠난다. 퇴임 후 강의는 더 하지 않겠다고 진작에 말해 두었다. 인문관에서 연구실의 불을 가장 늦게 끌 작정으로 공부했다. 다음 일은 후배들의 몫이니 간섭할 말이 없다. 어쭙잖은 사명감과 책임감은 남은 사람들보다 내게 더 독이다. 그냥 깨끗이 비켜주는 것이 맞다. 나는 또 내 할 일을 찾아 새 보금자리로 장소를 옮길 뿐이다. 더 천천히 걷고 더 말수를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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