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논설위원
역사상 가장 오래된 편지는 기원전 18세기쯤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 점토판을 꼽는다. 점토판은 발신자·수신자·용건 등 편지의 기본 형태를 온전히 갖췄다. 이 중 하나가 개인 간 최초 편지로 인용되는데, 그 내용은 연인에 대한 사랑이나 절절한 그리움이 아니라 질 나쁜 구리를 판매한 상인에게 항의하는 것이다. 편지가 당시 보편화했다는 방증이다.
편지는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는 지중해와 인도 북서부까지 영토를 넓혔지만, 지척에 있는 스파르타를 끝내 정복하지 못했다. 선대 왕인 필리포스 2세는 스파르타에 ‘만약에 내가 군대를 이끌고 간다면, 백성을 모조리 죽일 것’이라는 협박편지로 항복을 권했다. 이에 스파르타는 단 한 글자로 답신했다. ‘if(만약에)’. 아인슈타인 박사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핵무기 개발 촉구 편지,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한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의 편지, 핵전쟁 위기까지 치달았던 쿠바 사태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편지 등등.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외의 과학·기술 인재를 국내로 불러들이기 위해 쓴 구구절절한 설득 편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못으로 눌러 쓴 편지 등은 그 시대의 역사다.
덴마크가 올해 400년간 유지한 편지 배달 서비스를 중단했다. 덴마크는 전자 우편과 디지털 인증 시스템이 잘 구축된 디지털 선진국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25년간 편지 발송량이 90% 이상 줄었고, 거리의 빨간 우체통도 사라져 골동품 경매에 나오는 신세가 됐다. 우리나라 연간 평균 우편 물량은 25억∼30억 통 정도다. 1인당 연간 이용량은 70통 수준인데, 전자상거래로 인한 택배형 물량은 급증하고, 편지 등 일반 우편은 급감하는 추세다. SNS 메시지와 이메일로 연락은 잦아졌지만, 마음의 소통은 어려워졌다.
대통령실이 지난 세밑 용산에서 청와대로 이전하며 과거와 같은 ‘구중궁궐’ 불통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생중계와 유튜브, SNS 소통 등을 늘린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다. 이 대통령은 디지털 소통에 능하지만 아날로그 소통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지금 같은 정국 상황에서 대통령이 한땀 한땀 눌러 쓴 정성 어린 손편지만 한 진정성 있는 소통 수단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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