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올해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면서 안보 분야에선 무질서 속에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이런 중에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논의가 다시 나오고 있다. ‘전작권 회복’이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국방부 2026년 업무보고에는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전환이 목표로 제시됐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도 한국이 원한다면 조기 전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전작권을 조기에 전환하자는 주장에는 검증되지 않은 전제가 깔려 있다.
첫째, 국제 정세가 완화되면 한반도 긴장도 개선될 것이란 기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 러·북에 대한 압박도 완화되고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가 생길 것이란 예상이다. 그러나 북·중·러 권위주의 연대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핵능력을 바탕으로 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커지는 현실에서, 효용성이 검증된 억제 구조를 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둘째, 전작권 전환이 미국의 안보공약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물론 전환 자체가 동맹 파기를 뜻하진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새로운 국가안보 전략에서 서반구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유럽과 인·태 지역에서는 동맹의 부담 확대를 분명히 했다. 거래 성격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전작권 전환은 한반도 방위 부담을 한국에 떠넘길 명분이 된다. 이는 동맹의 정치적·전략적 신호 효과를 약화시켜 전쟁 억제 태세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미국이 전략자산과 감시·정찰 능력을 계속 제공할 것이므로 억제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항공모함·핵잠수함·B-2폭격기·경보위성 등은 핵심 억제력이다. 그러나 이를 지휘·통제할 체계와 능력이 없다면 무의미하다. 단순한 자산 제공이 아니라, 위기 시 즉각 작동하는 통합 지휘체계와 연합 운용 경험이 억제의 관건이다. 미 전략자산을 실전에서 운용할 경험과 역량이 충분한지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섣부른 전작권 전환의 가장 큰 위험은 북·중·러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1950년 ‘애치슨라인’은 한반도가 미국의 동북아시아 군사 방어선에서 제외됐다는 오판을 낳았고, 결국 6·25 남침전쟁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전작권 전환 논의 역시 미국의 개입 의지에 대한 의문을 자극해 ‘제2의 애치슨라인’으로 인식될 위험을 안고 있다. 억제는 능력뿐 아니라 의지를 적(敵)이 인식함으로써 유지되기 때문이다.
전쟁 억제의 핵심은 ‘미국이 실제로 개입해 함께 싸울 것’이라는 보장이다. 나토(NATO)는 전작권을 미군 장성에게 위임하고, 전술핵 전진 배치와 지휘 일체화를 통해 억제의 자동성을 유지한다. 이는 주권 침해가 아니라 평화를 지탱하는 장치다. 다수의 주권국가가 이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급한 과제는 한미 연합억제태세의 강화다.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적 가시성과 지휘 체계의 일체화를 높이고,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며, ‘아시아판 나토’ 구축을 통해 우리의 대응 의지가 분명히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제2의 애치슨라인을 스스로 설정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검증된 억제를 지키는 신중함과 동맹을 전략적으로 강화하는 지혜로 새해 국가안보를 시작할 때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