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산업부 차장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26’의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과 하드웨어가 결합한 ‘피지컬 AI’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해 CES에서 ‘생성형 AI의 다음 단계는 피지컬 AI’라며 비전을 제시한 바 있고,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전면에 등장한 올해 CES에선 ‘피지컬 AI 시대 개막’을 선언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질주하고 있다. 구글 웨이모와 테슬라, 중국 바이두의 ‘아폴로’는 각국 대도시에서 무인 로보택시를 운행하며 글로벌 확장을 서두르고 있다. 엔비디아도 CES에서 벤츠와 손잡고 1분기 자율주행 서비스 출시를 선언했고, 아마존의 자회사 죽스도 자율주행 차량을 공개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은 더 치열하다. 중국 에이지봇은 이번 CES에서 산업용부터 가정용까지 아우르는 5종의 라인업을 선보였다. 특히,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마라톤을 완주해 내구성을 입증한 A2 모델은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계 여러 로봇대회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중국 유니트리 역시 4900달러(약 710만 원)대의 초저가형 모델을 공개하며 상용화를 넘어 대중화를 선언했다. CES 2026에서 공개된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주변을 인식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반응해야 가능한 테니스, 격투기 등도 원활하게 수행해 관람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번 CES에 나오진 않았지만, 미국 테슬라 공장의 옵티머스, 아마존 물류 현장의 로봇 역시 방대한 실증 데이터를 학습하며 후발 주자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피지컬 AI의 글로벌 경쟁의 본질은 이제 기술 구현을 넘어 ‘누가 더 빨리, 더 싸게 대중화하느냐’로 넘어갔다.

문제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가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미국의 기술이다. 산업 현장 투입 시점도 2028년으로 잡혀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터를 쓸어 담고 있는 미국·중국 로봇업체와의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자율주행 기업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테슬라 완전자율주행(FSD) 서비스가 서울 강남을 누비며 데이터를 학습하는 동안, 정작 한국 스타트업들은 겹겹의 규제에 갇혀 시동조차 제대로 걸지 못하고 있다. 피지컬 AI의 핵심은 인도와 도로 등 공공 공간에서 보행자의 행동 패턴 등 시각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상 불특정 다수의 촬영 동의를 받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만 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인도와 도로는 물론 산업 현장에서 테스트하려면 도로교통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각종 규제와 인증 심사의 벽을 넘어야 한다.

미·중 기업들이 미완성 시제품을 현장에 투입해 데이터를 쌓으며 혁신하는 배경에는 ‘선 허용, 후 규제’라는 네거티브 규제 철학이 있다. CES 2026에서 목격한 기술 격차는 냉정히 말해 ‘규제 격차’의 결과물이다. 한국이 피지컬 AI 시대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의 모래주머니를 떼어내고 기술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진짜 운동장’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용권 산업부 차장
이용권 산업부 차장
이용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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