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들은 우케 멍석에 앉았던 참새 떼처럼 와 웃으며 우르르 도망쳤다’. 1974년부터 연재된 송기숙의 소설 ‘자랏골의 비가’를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언뜻 보면 오타처럼 보이는 ‘우케’는 무엇일까? 무언가를 펴 놓고 말리기 좋은 것을 가리키는 멍석 위에 참새 떼가 좋아할 만한 것이 놓여 있다면 알곡이라 추정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렵다. 이토록 낯선 말이지만 놀랍게도 한글 창제 직후에 간행된 ‘훈민정음’에도 이 단어가 나타난다.

사전을 보면 방아를 찧기 위해 말리는 벼라 풀이돼 있으니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쓰거나 들어봤을 말이다. 그러나 숱한 방언 조사 과정에서도 이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제는 문헌이나 사전에나 남아 있는 단어에 가깝다. 벼나 쌀과 관련된 단어 중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어디 이뿐이랴. 벼에 곰팡이가 끼어 낟알이 까맣게 변한 ‘깜부기’란 말도 들어본 지 오래다. 방아를 찧은 후에도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채 밥 속에 섞여 들어간 ‘뉘’도 옛이야기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말은 인간의 삶 속에서 생명을 얻고 잃는 것이니 말의 성쇠는 결국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햇볕에 벼를 말리는 모습을 봐야 우케라는 단어를 들어볼 수 있을 텐데 그 광경이 드물어졌다. 병충해 방제를 철저히 하고 기계로 방아를 찧으니 깜부기와 뉘를 볼 일도 드물어졌다.

삶의 변화에 따라 사라져 가는 단어를 안타까워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배달 음식 밀봉용 비닐을 제거하기 위한 플라스틱 칼을 뭐라 해야 할까? 영어권에서는 ‘실 오프너(seal opener)’라 한다지만 그 의미가 쉽사리 와닿지 않는다. 얇은 철판을 왕관 모양으로 오므려 병을 밀봉한 것을 따는 도구를 ‘병따개’라고 하듯이 좀 더 직관적인 말을 만들 수는 없을까? 물론 ‘비닐따개’보다는 훨씬 더 나은 말이어야 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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