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스물아홉 살 청년이 보이스피싱에 당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일당은 범죄에 연루됐으니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곧 잡혀 들어갈 수 있단다. 수사협조 문서를 보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지시만 따라야 한다는 말에 집 대신 근처 에어비앤비에 스스로를 감금했다. 일당에 수천만 원의 돈을 넘겨주기 직전 경찰에 신고했다. 정말로 지옥 같은 4일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서른을 앞둔 지난달 이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안타까운 마음에 윽박질렀다. “어떻게 나이도 젊은데 그런 거에 속아 넘어갈 수 있냐?” 자책하는 친구를 다독여주며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해가 됐다. 친구는 살면서 검사 한 번 만나본 적 없고 수사기관에서 조사 비슷한 것조차 받아본 적 없었을 테다.
범죄자들은 검사의 이름을 빌려 친구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협했지만, 정작 이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는 ‘수사기관’으로서 검찰은 9개월 후면 우리나라에 더 이상 없다. 앞으로 검찰의 직접수사는 불가능하며, 검사는 기소 여부 결정과 재판 공소유지 역할 정도만 하게 된다.
현재 존치를 두고 논의가 진행 중인 검찰 보완수사권마저 사라질까 우려스럽다. 보이스피싱 같은 민생 범죄는 경찰의 1차 수사만으로 배후 세력을 모두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법무부가 주최한 범죄 피해자 세미나에서 만나 종종 소통하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김진주(가명) 작가는 “수사기관의 정성과 관심에 따라 사건의 결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개혁으로 과연 더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질지 의문이다. 항소심을 앞둔 김 작가에게 “1차 수사 과정에서 발견되지 않은 증거가 새로 발견됐습니다. 사법부를 대신해 죄송합니다”라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한 검사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과연 검찰 없는 세상을 살아갈 잠재적 범죄 피해자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단순히 서류상 기소 여부만 판단하는 검사가 아니라, 빈틈을 찾아내고 범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검찰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가 겪은 지옥 같은 4일에 대한 완벽한 정의 구현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김군찬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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