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파이프오르간 제작한 부친 덕에
클래식 음악 들으며 ‘겨울나기’
슬플 땐 바흐, 즐거울 땐 베토벤
다양한 카타르시스로 새 힘 얻어
같은 곡도 연주자별로 차이 존재
지적 자극 받고 만물 질서 깨닫아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州)인 이곳 로드아일랜드의 1월은 한겨울이다. 서울과 큰 차이가 없어 소한과 대한 사이에 가장 춥고, 최고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는 날은 극히 드물다. 대서양을 면하고 있어 바다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오는 날도 많다. 이곳 겨울은 만만찮다.
한겨울은 정말 버티기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하루에 한 번, 한 시간씩은 집 주변을 반드시 걷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만, 바람이 심하거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 많아 겨울 산책은 사실상 이틀에 한 번꼴이다. 산책을 하지 못하는 날에는 온종일 집에 머물게 되는데, 그게 참 힘들다. 그런 하루를 견디기 위한 전략으로 몇 년 전부터 택한 게 하나 있다.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것이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클래식을 자주 듣지만 한겨울의 음악은 특별한 의미가 있고, 밖에 나가지 못하는 하루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많이 접했다.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했던 아버지 덕분이다. 자연스럽게 음악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어린 나이였던 1960년대, 우리 집에는 다른 집에 비해 음반도 많은 편이었다. 초등학생이던 내게 “음악은 바흐야”라고 하시던 아버지 말씀을 잊을 수 없다. 바흐가 파이프오르간을 위한 음악을 많이 작곡해서 그러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스리 B’로 묶이는 베토벤과 브람스 음반도 많이 가지고 계셨고, 드보르자크나 라벨, 거슈윈 같은 음반들도 갖춰 놓으셨다. 어릴 때 이런 음악을 자주 듣다 보니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팝송보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나 ‘랩소디 인 블루’에 더 친숙했다. 고등학교와 대학 때 펑크와 뉴웨이브에 빠졌었지만, 아무래도 클래식이 가장 편하고 마음이 통한다.
중학생이 된 내게 어머니는 악기 배우기를 권하셨고, 나는 클라리넷을 선택했다. 어머니는 고등학생 시절 플루트를 배웠고, 밴드에도 참여하셨다. 아버지는 파이프오르간을 만드셨지만, 악기를 배운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 에릭은 비올라를 택했다. 그때 음악 수업은 콘서트 밴드와 오케스트라로 나뉘었는데 나는 콘서트 밴드, 에릭은 오케스트라반에 들어갔다. 프로 재즈 연주자 출신 콘서트 밴드 담당 교사는 매우 엄격하면서 학생을 끝까지 키운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나는 클라리넷을 썩 잘 불지 못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그만뒀다. 에릭은 실력이 좋아 음대에 들어가 지금은 오케스트라 프로 연주자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 에릭을 통해 스트라빈스키의 ‘독주 비올라를 위한 비가’나 쇼스타코비치의 ‘비올라 소나타’를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된 뒤 에릭과는 사는 곳이 멀어지면서 가끔 이메일이나 문자로 안부를 나누곤 했다. 에릭의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2015년이었다. 5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페이스북 활동이 뜸해지긴 했지만 아픈 줄은 몰랐던 터라 큰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교 급우 대표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조문을 하고 돌아와 많이 울면서 클래식 음악을 내내 들었다.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파이프오르간을 더는 만들 수 없게 되셨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종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내게 낮에 들은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무슨 이유인지 모차르트 음반을 한 장도 안 가지고 계셨는데,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이때부터 모차르트를 좋아했다.
로드아일랜드의 매서운 추위 속에 클래식 음악을 듣노라면 세상을 떠난 부모와 친구가 떠오른다. 슬픔과 그리움, 그들과 나눈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슬픔이 커질 때면 흐느껴 우는 것 같은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라단조’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 마단조’를 듣는다. 그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떠오를 때면 희망이 섞인 듯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5번’과 사티의 ‘3개의 짐노페디’를 고른다. 이렇게 클래식 음악을 그때그때 골라 들으며 음악을 통해 느끼는 다양한 카타르시스를 통해 힘든 계절을 넘기는 힘을 얻는다.
클래식 음악을 통해 얻는 건 친숙함과 추억만이 아니다. 활동이 제한적인 한겨울에 지적인 자극도 준다. 바흐는 엄격한 질서 속에 음악이 흐르는데 섬세한 디테일이 대단하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사장조: 프렐류드’는 같은 곡을 들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지점이 있다. 연주자마다 조금씩 다른 부분을 비교하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17세기 독일 예수회 수사 아타나시우스 키르허는 음악의 보편성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면서 ‘음악은 만물의 질서를 깨닫는 것과 같다’고 썼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만물의 질서’를 배우노라면 지루할 틈이 없다.
곧 대한(大寒)이다. 입춘도 올 것이다. 겨울도 끝이 보일 것이다. 힘든 계절이 끝나면 클래식 음악을 듣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다른 음악을 듣는 시간이 늘어난다. 꽃이 활짝 피는 봄날이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재즈를 자주 듣는다. 매미가 우는 무더운 여름날이면 시원한 거문고 산조가 참 좋다. 단풍이 예쁜 가을날은 옛 팝송도 좋다. 그리고 낙엽이 쌓이며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면 마음의 평정과 힘의 원천인 클래식 음악을 다시 찾으며 한겨울을 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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