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욱 국가자산연구원 원장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을 보고 나면 “미래가 온다”는 말이 다르게 들린다. 새 기기를 늘어놓는 장면보다, 기업들이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다시 짜는 장면이 더 선명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은 더 그럴듯한 설명을 자랑하지 않았다. 대신, 생산·물류·서비스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 비용을 낮추고 납기를 맞추며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이 변화가 한국 경제에 던지는 첫 신호는, 경쟁의 단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좋은 제품’이 승부를 갈랐지만, 이제는 ‘좋은 운영’이 수익을 좌우한다. 설비가 멈추기 전에 이상을 알려 주고, 수요가 흔들리면 생산 계획을 재조정하며, 품질 문제의 원인을 데이터로 추적하는 기업이 더 싸고 더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제조 강국이란 이름도 공정·데이터·의사결정 체계를 얼마나 빨리 고치느냐에 달리게 된다.

다음 신호는, 전환 속도가 산업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자본과 인력이 넉넉한 기업은 자동화와 AI 도입을 가속화하지만, 많은 중소기업은 ‘필요는 알지만 시작이 어려운’ 상태가 되기 쉽다. 이 격차가 쌓이면 생산성·단가·납기에서 간극이 생기고, 거래 관계는 더 기울어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몇 개의 스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넓게 퍼뜨리는 정책과 시장의 장치다. 공동 구매형 클라우드, 표준 소프트웨어 보급, 현장 컨설팅 같은 작은 사다리가 많을수록 전환 속도는 빨라진다. 금융 역시 전환 비용을 나누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계획은 있으나 자금이 부족한 기업에 장기자금을 연결해야 생산성 향상이 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연결된다.

일자리는 이런 구조 변화가 국민의 삶으로 번역되는 통로다. 논쟁은 ‘일자리가 줄어들까’가 아니라 ‘어떤 일이 남을까’로 바뀌어야 한다. 반복입력·단순점검·정형보고 같은 직무는 축소되기 쉽다. 반면, 현장을 이해한 사람이 데이터를 읽고 공정을 조율하며 안전·품질·고객 경험을 책임지는 역할은 커진다. 일이 이동하는데 사람은 제자리이면 그 간극은 실업과 임금 격차로 나타나, 소비 위축과 지역 경기 둔화로 번진다. 일자리 문제는 결국 성장률과 내수·세수·재정 부담을 함께 흔드는 거시변수다.

준비의 우선순위도 분명하다. 첫째, 교육·훈련의 목표를 ‘정답’에서 ‘해결’로 옮겨야 한다. 도구를 쓰지 말라고 막기보다, 도구를 써서 더 나은 결과를 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이 첫걸음을 떼도록 데이터 표준, 공정 디지털화, 현장 실증을 묶어 지원해야 한다. 셋째, 고용 안전망은 보호에 머물지 말고 재교육·전직이 빨리 이뤄지도록 설계돼야 한다. 넷째, 데이터와 플랫폼이 소수에 고착되지 않도록 공정경쟁의 룰도 손봐야 한다. 전기요금, 보안 책임, 데이터 관리 기준 같은 기초 인프라 정비도 전환 속도를 좌우한다.

9일 폐막하는 CES 2026이 한국에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기술을 얼마나 빨리 들여오느냐가 아니라, 그 변화를 경제와 사회 안에서 얼마나 질서 있게 흡수하느냐이다. 기술은 이미 도착했다. 남은 선택은 분명하다. 변화를 구경하는 관객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전환을 관리하며 성장의 경로를 다시 그릴 것인가. 한국 경제의 다음 경쟁력은 발명보다 실행, 속도보다 설계에서 갈린다.

김수욱 국가자산연구원 원장
김수욱 국가자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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