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반미, 마약조직 수괴’ 혐의로 지난 3일 미군에 체포돼 압송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의 잣대로 종신형까지 받을 위기에 처했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국가 지도자를 자국 법정에 세우는 것은 국제질서에 대한 암묵적 경고다.

미국이 이렇게 마두로 부부 체포 작전을 감행한 것은, 의회 승인과 무관하게 국가 수장의 결단으로 타국 수뇌부 참수(斬首)도 가능하다는 공포감을 준다. 워싱턴발 ‘불편한’ 외국 국가지도자 체포-압송-기소 과정은 한반도 역시 예외가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 김정은에게는 ‘핵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끝’이라는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고, 불법 무기 거래나 사이버 해킹 등의 명분만으로도 유사한 작전이 전개될 수 있다는 심리적 타격을 가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실익 없는 동맹, 억제력 약한 동맹’은 언젠가 토사구팽 될 수도 있다는 암시로 다가온다.

국제법상 현직 국가원수는 타국의 형사 관할권으로부터 면책특권이 있는바, 국제형사재판소(ICC)와 같은 다자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무력 체포는 명백한 주권 침해이다. 마두로 정권은 부정선거, 족벌정치, 인권탄압, 마약·테러 연계 의혹에도 국가원수 면책으로 생존해 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힘의 철퇴’를 가함으로써 유명무실한 국제규범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이는 지난 7일 유엔 산하 31개와 비유엔 35개 기구 탈퇴 각서 서명에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자국에 유리하게 정립한 정의(正義)라는 명분으로 외국 국가 지도자 체포가 정당화될 경우, 세계는 보편적 가치인 인권 보호를 지향하는 유엔의 역할과, 훼손된 자유민주주의 가치 정립이라는 과제에 봉착하게 된다.

국제질서가 규범이 아닌 힘의 크기로 재편되고 있어 약소국들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미국의 마두로 처단에 주목하는 것은, 베네수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국제규범이 어떻게 다뤄질지에 관한 반성과 고심이 깊다. 국제규범이 반복적으로 무력화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보편적인 이상주의에만 맡길 수는 없다. 한반도는 여전히 정전(停戰)에 이은 냉전 중이며, 상습적 국제규범 파괴 집단인 북한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국제규범의 반복적인 실패에 이은 신(新)현실·냉전주의 회귀로, 한반도 안보 또한 힘의 질서라는 단두대에 올라 있음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된 압박과 이번 사건으로 체제 불안감을 더 크게 느낀 나머지 ‘핵무력 완성’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또한, 중·러와의 경제·군사 밀착에 의지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면서 국제적 핵 보유 용인 목표 아래 핵 군축·동결을 트럼프와 협상으로 담판 지을 채비를 서두를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사건에 섣불리 동조·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양극단은 피해야 한다. 북한이 유사한 국제적 사건을 오판해 도발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한편으로, 트럼프 정권의 돌발적인 대북 행동으로 한반도 안보가 더 위태로워지지 않도록 확고한 동맹 관리와 함께 독자적인 억제력(자강) 구비를 위해 초당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국제정치는 늘 이상주의 도덕을 추구하지만, 국가안보는 결국 힘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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