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새해 들어 국민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국정 기조가 ‘통합·포용’이다. 지난 2일 신년 인사회에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등을 돌리는 사회, 차이가 극단적 대립의 씨앗이 되는 사회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국민통합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지난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는 “함께한 세력만 모든 것을 누리고 그 외에는 배제하면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 된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권한을 가졌다고 해서 사회를 통째로 파랗게 만들 순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첫 실행부터 패착으로 귀결될 공산이 커진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로 지명한 게 외려 불신에 덧칠을 하는 셈이 됐다. 연일 터진 이 후보자의 결격 증거가 그렇거니와, 총리직을 제안받았다고 공개한 유승민 전 의원의 말대로 “그냥 사람 하나 빼 간 건데 이걸 통합, 연정, 협치라는 거창한 말을 붙일 일이 아니다”. 여러 차례 “모두의 대통령” “통합은 유능함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함의 결과”라고 했지만, 이제는 귓등으로 듣는 정치적 수사로 여길 이가 많을 것이다. 통합을 말하는 언어와, 실제 정치 간의 괴리가 커서다. ‘탕평 인사’ 정도로는 꿈쩍도 않을 만큼 분열상이 난마(亂麻)라는 얘기다.
국민통합론이 레토릭으로 비치지 않을 방법은 하나다. 주판알을 튕기지 말고, 먼저 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권력 자제 선언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통합 노력이 평가받는 것은 DJP 연합이라는 연정,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통해 보여준 보복 근절 실천이었다. 권력 일부를 내주고 정치기반 약화도 감수했다. IMF 사태 때 고통분담을 노사정 대타협의 제도로 만든 게 가장 컸다. 통합은 선언이 아니라, 제도로 실행해야 함을 보여줬다.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반대 진영 비판의 핵심은 일방주의다. 현 정부 들어서도 정부조직법부터 정보통신망법까지 야당을 협상 대상이 아니라 장애물로 취급했다. 민주국가의 근간인 삼권분립 와해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정치적 분열의 가장 큰 요인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독재, 전체주의에 빗댄 비판이 쏟아지는 연원이기도 하다.
국민통합이 진정 최우선 과제라면, 정치 양극화를 해소해 분노 선동과 혐오적 언어가 줄길 바란다면, 일방주의에 대한 불안증후군을 없앨 방책을 가장 먼저 결단해야 한다. 자기 권한의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이다. 그걸 야당에 주는 정도는 해야 한다. 분점 정부의 전임 대통령이 방패로 썼던 거부권은 다시 녹슨 고철이 되지 않았나. 여야가 대화·타협하면 될 일이라고 뒷짐 지는 건 ‘국회 존중’이 아니다. 통합정치의 책임을 떠넘기는 게 된다. 대통령이 솔선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 현실적으론 법안이 공표되기 전에 ‘야당 동의’ 절차를 두는 정도가 되겠지만, 정치적으론 ‘거부권 양도’가 될 것이다. 국회 차원의 초당적 위원회를 구성해 실질적 거부권을 부여할 수도 있다. 말이 아니라 제도로 통합을 강제하기 위해서다. 한 번이라도 실현된다면 국회 풍토가 달라질 것이다.
모든 법안에 그러라는 게 아니다. 헌법의 내재적 한계인 이해충돌금지 원칙에 반하거나 위헌성, 국익 훼손, 권한 침해·오용 가능성 등 구체적인 조건을 달면 된다. 전례도 많다. 일례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지난 2005년 내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놓고 분열돼 갈등했다. 국회 과반의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강행 처리했다. 반발이 커지자 노 전 대통령은 “조정이 가능하다”고, 여당을 제어하며 사실상 야당에 거부권을 줬다. 여야는 재개정에 합의할 수 있었다. 최악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통치자의 책임감이 엄중했을 것이다.
거부권 양도라니, 권력의 생리를 한참 모른다고 면박당할 소리인 줄도 안다. 그래도 길게 열을 올리는 건, 권력을 덜 쓰겠다는 약속만큼 유효한 국민통합 방책이 없을 정도로 심대하기 때문이다. 그 약속이 제도로 반복될 때 국민통합론은 신뢰를 얻게 된다. 정치적 자산도 된다. 지지층에만 의지할 생각이라면 통합은 꺼낼 단어가 아니다. 제도적 실행 방안 없이 말만 꺼냈다가 실패하는 순간, 그게 레임덕의 시작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