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조용필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왕의 남자’(2005)로 천만 관객을 모은 이준익 감독은 이듬해 왕의 유배지(영월)로 촬영 장소를 옮긴다. 몰락한 가수 왕 이야기다. 1988년 가수 왕 최곤(박중훈)과 일편단심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우정(때로는 투정)을 그린 ‘라디오스타’(2006). 포스터에 나온 고백 문구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 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방송사 최초의 가수 왕은 최희준(1966)이었고 최고 인기 가요는 그가 부른 ‘하숙생’이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지금은 하숙집보다 장례식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곡이다. 일화에 따르면 노랫말(작사 김석야)은 절(동학사)에서 탄생했다. 출가한 스님이 삭발할 때 버린(남긴) 머리카락 한 뭉텅이를 우연히 발견한 게 창작의 계기였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하숙생’ 2절)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는 곳. 장례식장은 선약 없이 왔다가 기약 없이 가는 곳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정현종 ‘방문객’)인데 사람이 간다는 건 더욱 어마어마한 일 아닌가. 이걸 임의로 베껴 쓴다면 제목은 ‘문상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배우 안성기의 장례식장엔 덕담 대신 미담이 가득하다. 중학교 동창인 조용필도 왔다. 카메라가 국민가수를 그냥 보내 줄 리 없다. “성기야 또 만나자.” 영화 ‘라디오스타’엔 조용필의 노래(1987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도 나온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그대 긴 밤을 지새운 별처럼 사랑의 그림자 되어’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을 사랑은 영원히 남아 언제나 내 곁에’
여기서부턴 PD의 반성문이다. ‘일밤’ 연출을 할 때 ‘스타 청문회’라는 코너를 기획했는데 섭외 단계부터 험난한 여정이 예측됐던 제목이었다. 이럴수록 모시기 어려운 스타를 초반에 섭외해야 프로가 장수할 수 있다. 대담하게도 첫 회에 감히 상상조차 어려운 스타를 공략하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예능은 물론이고 드라마조차도 출연하지 않던 순도 100% 영화배우 안성기. 그 순수함을 무너뜨리려고 낡은 학연까지 동원했다. (나는 그의 초등학교 5년 후배)
악마의 편집 이전엔 악마의 속삭임이 있다. ‘스타 청문회’라는 제목은 미리 알리지 않았다. 근황을 인터뷰하시면 된다, 곤란한 질문엔 답변 안 해도 된다는 말만 믿고 이 점잖은 분이 예능 프로 나들이를 어렵사리 결심해 준 것이다. 그날 청문회 진행자(개그맨 김형곤)에게 ‘곤욕’을 치른 후 아마 이분은 ‘예능PD는 절대 믿으면 안 되겠군’ 이랬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제작진으로서 얻은 건 시청률이요 잃은 건 신뢰였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노래 한 곡의 세상 풍경’ 코너에서 양희은의 ‘들길 따라서’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가수가 놀라운 제안을 했다. “상대역으로 안성기 어때요? 남편이랑 절친이라 내가 섭외할 수 있는데” 그러더니 바로 전화해서 오케이 사인을 준다. 세상에. 양희은과 안성기가 뮤직비디오를 찍다니. 예능 역사에 남을 일인데. 그러나 성사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안성기 측에 이런 정보를 날린 것이다. “그걸 믿으세요? 백 프로 몰래카메라예요.” 전과가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일장춘몽 자업자득. 그 후 여러 자리에서 뵐 때마다 한결같이 따듯한 미소로 반겨 주셔서 그 인품과 도량에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영결식은 일종의 졸업식이다. 옛날엔 노래도 불렀다. 처음엔 후배들이 부른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마지막엔 선후배가 합창한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그날 졸업식에서 선배가 나직이 말하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 준 당신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는 천재보다 천사, 승자보다 성자에 더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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