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나라 운명이 바람 앞 촛불 신세인 베네수엘라와 이란은 공통점이 있다. 망국병인 살인적 인플레이션이다. 베네수엘라는 2018년 13만%의 초(超)인플레이션 이후 공식 통화인 볼리바르는 휴지가 됐다. 대신 달러화로 거래한다. 이란의 리알화 가치도 반 토막 났다. 최근 물가가 48.6%로 치솟자 “더는 못 살겠다”며 상인들과 대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까지 등장하면서 하메네이 정권은 벼랑 끝에 몰렸다.
세계적 산유국인 두 나라에 판친 부패와 포퓰리즘도 공통분모다. 유가가 하락하고 경제 봉쇄까지 겹치면서 재앙이 닥쳤다.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데도 포퓰리즘 유지를 위해 과도한 통화 발행에 나선 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결국, 초인플레이션의 망국병과 함께 파멸이 찾아왔다.
최근 국내에서도 환율과 집값 불안의 원인으로 ‘M2 팽창’이 지목되고 있다. M2는 현금과 수시입출식 예금, 2년 미만 정기예·적금, 머니마켓펀드(MMF) 등 언제든 돈으로 바뀔 수 있는 대표적 통화량 지표다. 문제는 M2가 지난해 10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8% 이상 너무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 미국 M2 증가율 4%의 두 배에 이른다. 매달 유동성이 평균 32조 원씩 풀려나가 집값을 자극하고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을 불렀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한국은행은 물타기에 나섰다. 환율 불안 주범으로 해외 주식 투자 급증을 지목했다. M2 통계도 개편해 상장지수펀드(ETF) 등 수익증권을 빼버렸다. 그 결과, M2 증가율이 8%대에서 5%대로 낮아졌다.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을 가릴 수 없다. 추가경정예산 등 확장 재정 역시 M2 팽창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적자 국채로 재원을 조달하고, 은행 등 금융기관이 그 국채를 매입하는 구도여서 결국 한은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셈이다. 형식은 확장 재정이지만 결과는 통화 공급 확대와 마찬가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통화량이 1% 늘어나면 집값은 1년 내 0.9%포인트 상승한다. 정부가 앞장서 돈을 푸는데 집값이 잡힐 리 없다. 아무리 국민연금을 동원해도 환율 상승을 막기 어렵다. 포퓰리즘 부작용은 환율과 금리, 수입 물가에 고스란히 전이된다. 민생 경제를 위해서도 물가 안정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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