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서

김성훈 산업부 기자
김성훈 산업부 기자

“차라리 통신요금을 낮추라는 압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KT의 위약금 면제 마감 시한을 하루 앞둔 12일까지 21만 명을 훌쩍 넘는 가입자가 경쟁사로 이탈한 것을 두고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위약금 면제는 보안 사고에 대한 책임 조치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번호이동 판촉 이벤트만 부추기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며 이같이 반문했다. 그는 앞서 지난해 7월 위약금 면제를 시행했던 SK텔레콤에서 16만6000여 명이 타 통신사로 빠져나간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위약금 면제가 가입자 이탈 심리를 자극하면서 통신 3사의 땅따먹기 경쟁만 부추기는 폐해만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규제 당국과 정치권의 태도에 있다. 통신사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곧장 위약금 면제 수용을 압박했지만, 그 직후 벌어지는 과열 경쟁과 시장 왜곡에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그 결과, 통신 3사는 위험한 학습 효과를 얻게 됐다. 보안 사고가 발생해 가입자를 뺏기더라도 타 통신사에서 또 다른 해킹 사태가 빚어지면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는 식의 사고다. 실제로 KT는 고객 수성,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신규 가입자 유치를 위해 단통법 폐지 이후에도 잠잠했던 보조금 경쟁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태를 경험한 미국의 통신사들은 우리와 달리 보안 사고 이후 기술과 보안 투자 경쟁으로 국면을 전환해 왔다. 고객을 붙잡는 방식도 가격 조정이었다.

신뢰를 잃은 서비스라면 가격에서 먼저 답을 내놓는 것이 상식이지만, 위약금 면제라는 당국의 일회성 조치 압박에 사고의 본질 자체가 희석되는 모양새다. 규제의 책무는 사고를 낸 사업자가 구조적 비용을 지고, 이용자가 실질적 혜택을 체감하는 시장 질서를 만드는 데 있다. 정부는 왜곡된 경쟁의 방향을 요금 인하와 품질·보안 개선으로 되돌려야 한다.

김성훈 기자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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