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새해를 맞으면 거창한 계획을 세우곤 했는데, 이젠 그런 것도 부질없고 그냥 약간의 다짐을 하는 정도다. 새 다이어리를 장만하여 목표를 궁체 글씨로 정성스럽게 쓰곤 했지만, 반년도 안 돼 흐지부지한 경우가 허다했으니 말이다. 그냥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작심한 정도다.

‘바다는 물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잘 어울리는 작가가 박충의다. 작가로서의 삶과 정신이 숫제 바다 그 자체다. 그림이나 삶이 무욕과 초월의 경지에 있다. 그의 근작은 마치 ‘해불양수’를 도해하듯 벽해(碧海)를 그리고 있다. 갯벌을 수놓은 잡다한 흔적을 무심히 바라보는 초월적 바다의 표정이 보인다.

여백은 바다인데, 간조와 만조 어느 물때로 특정되지 않는 ‘물의 영토’로 묘사되고 있음이 특이하다. 작은 결정체들로 덮여 있는 것이 소금일 수도 있고, 무수한 생명체가 서식하는 ‘풍요’의 현상일 수도 있다. 그 가운데 조각배 하나가 외롭게 떠 있다. 자유와 불안이라는 실존적 고뇌마저도 품어주는 바다.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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