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지난 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과를 보면서 ‘듣는 사람이 짜증 낼 하나 마나 한 사과’란 생각이 들었다. 사과는 타이밍과 진정성이 핵심인데, 모두 낙제점이었다. 황당한 계엄 13개월 만에, 대표 취임 5개월이 된 시점은 늦어도 너무 늦어 등 떠밀려 하는 억지 사과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늦었으면 내용이라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파격적인 수준이어야 했는데, 무성의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우선, 그는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은 잘못된 수단이었다”며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는데, 무미건조하고 상투적이었다. 위헌·위법한 계엄을 언급하면서 ‘잘못된 수단’ 운운하는 자체가 영혼이 없다. 명색이 기자회견이라면서 짧은 사과문만 낭독하고 기자 질문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사과도 기자회견도 아니다. 국민과 건전한 야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은 ‘윤석열 절연’인데, 윤 자도 입에 올리지 않고 “과거의 일들은 사법부의 판단과 역사의 평가에 맡겨 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제3자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한가하고도 느긋한 태도다. 명백한 잘못을 법원과 역사에 넘겨 놓고 어떻게 계엄·탄핵의 강을 건너겠다는 건지, 도무지 요령부득하였다.
형식과 내용이 한참 떨어지는 사과보다 훨씬 더 나쁜 게 사과 후에 정반대 행동을 하는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을 절망토록 한 셈이다. 이런 경우라도 사과와 불일치 행동 간에 최소 몇 달은 걸리는데, 장 대표는 사과문 발표 다음 날 ‘도로 친윤’ 지도부를 구성했다. 장 대표는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장 대표의 계엄 옹호, 윤 탄핵 반대 노선을 비판하면서 사퇴한 김도읍 정책위의장 후임으로 친윤계이고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한남동 관저를 찾았던 정점식 의원을 지명했다. 지명직 최고위원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한 조광한 경기 남양주병 당협위원장을 임명했다.
‘내가 사과했다고 진짜로 반성한 줄 알았냐’고 국민을 우롱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일본 총리나 독일 총리가 일제강점기를 사과하거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사죄한 직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히틀러를 찬양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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