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막 오른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

효율성 타당성 논란 여전해도

국가 기술자산 만드는 일 중요

 

장기적 기술 경쟁력 파악 중요

현장 매출 창출로도 연결돼야

전문가 집단의 면밀 검토 필수

독자적인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을 목표로 한 대규모 국가 과제가 첫 번째 경쟁 시연을 앞두고 있다. 거대언어모델(LLM)을 비롯한 인공지능(AI) 기술이 산업 전반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른 상황에서, 해외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나라만의 기술적 토대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는 분명히 유의미하다. 다만, 사업의 본질을 두고 막대한 재원 투입의 효율성이나, 범용모델 개발이 특정 산업에 특화된 모델 구축보다 우선돼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타당성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시도가 과연 일회성 보조금 사업을 넘어 지속가능한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과제는 이른바 ‘챌린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정한 목표를 설정하고 제한된 기간 안에 경쟁을 통해 성과를 도출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는 참여 주체들의 몰입도를 극대화하고 단기간에 기술적 도약을 이끄는 데 분명히 장점이 있다. 정책적 관점에서도 가시적인 지표를 통해 사업의 진척도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어 설명력 측면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파운데이션 모델과 같이 대규모 자원 투입과 장기간의 기술 축적이 필수적인 영역에서는, 이러한 단기 성과 중심의 접근이 자칫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첫째, 중요한 점은 무엇을 목표로 삼고,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바라볼 것인가이다. 단순히 글로벌 모델보다 몇 점 높은 점수를 기록했는지를 넘어, 어떤 팀이 더 의미 있는 기술적 선택을 했는지, 어떤 접근이 장기적으로 확장 가능하며 재사용 가능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지를 함께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 방법의 안정성, 데이터 정제 및 확장 전략, 대규모 스케일업(scale-up) 과정에서의 경험, 그리고 분산 학습과 서빙을 포함한 풀스택(full-stack) 최적화 역량은 단기간에 수치로 환산되기 어렵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들이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가치가 충분히 조명되지 않는다면, 개발 현장은 특정 지표에만 최적화된 엔지니어링 개선에 안주하게 될 위험이 크고 원천 기술의 깊이는 얕아질 수밖에 없다.

둘째, 공공 재원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대중적 관심과 사회적 설명 책임은 지극히 중요하다. 하지만 AI와 같은 고난도의 전문 영역에서는 대중적 인상이나 직관적인 체감이 정밀한 기술적 판단을 대신해서는 곤란하다. 전문가 집단이 기술적 내용을 엄밀하게 검토하고, 단기 성과와 장기 가치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필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성숙한 기술 생태계는 전문가를 배제하거나 대중성에만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전문성을 식별하고 그 판단을 신뢰하는 합리적 과정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만약 평가의 잣대가 정교하지 못하다면, 이번 과제는 기술적 도약의 기회가 아니라 한정된 국가 자원을 소진하는 소모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셋째, 이 과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종착역은 벤치마크 리더보드의 상단이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 ‘수익 모델의 완성’이다.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하다. 국가의 지원은 초기 동력을 제공하는 마중물이 될 수는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영원한 버팀목이 될 수는 없다. 개발된 모델이 금융·의료·제조 등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난제를 해결하고 구체적인 매출과 순익을 창출하며, 그 성과가 다시 차세대 기술 개발과 모델 고도화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경제적 생존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 기술은 결국 고립된 연구실의 기록으로만 남게 될 뿐이다.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과제는 이미 중요한 출발선을 넘었다. 이제는 단기적인 순위 경쟁이나 외형적 성과 비교에 머물기보다, 장기적으로 축적되고 활용될 수 있는 ‘국가적 기술 자산’을 남길 수 있도록 한 단계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누가 이겼느냐’는 단편적인 결과보다 ‘우리에게 어떤 유의미한 기술적 뿌리가 남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대규모 모델을 직접 다루며 얻은 실전 경험과 그 과정에서 도출된 독창적인 노하우가 우리 AI 생태계의 튼튼한 토양이 되길 기대한다.

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