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당국의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이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물거품이 됐다. 해외주식 양도세 한시적 면제에다 국민연금과 수출 대기업까지 동원했지만, 원·달러 환율은 되돌림 현상으로 13일 오전엔 1473원까지 치솟았다. 예견된 일이다. 당국이 26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헐어 환율을 1429원까지 끌어내리자,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미국 주식을 싸게 사들일 기회로 활용했다. 새해 들어 9일까지 개인의 미 주식 순매수는 사상 최대인 19억4217만 달러나 됐다. 반도체 슈퍼 호황과 지난해 780억 달러의 무역 흑자, 코스피 75.8% 급등조차 원화 약세를 막지 못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문제는, 앞으로 닥칠 상황이 더 걱정된다는 점이다. 최근 원화 약세를 부추긴 핵심 변수는 엔화 급락이다. 그런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을 시사하자 엔화는 달러당 158엔 선을 넘는 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자민당이 승리하면 재정 확대로 엔화 약세가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여기에 올해 스페이스X, 오픈AI, 앤스로픽 등 미국의 초대형 비상장 기업들이 잇달아 상장을 추진 중이다. 기업 가치가 수천억에서 1조 달러에 이르는 이들 기업은 ‘서학개미’ 자금을 빨아들일 블랙홀이 돼 원화 약세를 한층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원·달러 환율이 1500∼1600원대를 뚫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적지 않다. “원화가 휴지 조각 될 것”이라는 괴담까지 횡행하는 지경이다. 환율 급등은 저성장과 맞물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대만에 추월당했고, 11년째 소득 3만 달러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K 함정’에 빠져 있다. 국민연금과 외환보유액을 동원한 땜질식 처방이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통화 가치는 고통스럽더라도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정공법으로만 지킬 수 있다. 규제를 과감히 풀고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어느 때보다 성장 친화적 정책으로 국내 투자를 북돋는 게 절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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