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수첩

우려가 현실이 됐다. 대장동 개발비리 특혜 의혹 사건 민간업자들의 범죄 수익 환수를 추진 중인 경기 성남시가 5579억 원 규모 가압류·가처분을 신청해 법원의 인용 결정을 받았지만, 이들의 통장을 열어보니 4억7000만 원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면서 ‘범죄 수익 수천억 원이 증발했다’는 우려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성남시는 최근 김만배·남욱·정영학·유동규 등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가처분을 집행한 결과 금융계좌 잔액이 4억7000만 원에 불과했다고 12일 밝혔다. 성남시가 법원에서 인정받은 가압류·가처분 금액의 0.08% 수준이다. 성남시는 검찰이 이미 2022년 수사 과정에서 이러한 상황을 상당 부분 파악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 검찰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대장동 일당의 추정 범죄 수익 4449억 원 가운데 96% 이상이 이미 계좌에서 빠져나간 상태였다. 서울중앙지검은 “보전처분할 때 보전하려는 액수와 실제 집행되는 재산 가액이 불일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철저한 환수를 위해 잔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계좌를 가압류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검찰이 대장동 사건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면서 범죄 수익 환수 통로가 사실상 닫혔다는 점이다. 1심 재판부는 김만배 등에게 검찰이 구형한 7524억 원 추징을 받아들이지 않고 473억 원대 추징금만 선고했다. 항소했다면 2심에서 배임액과 추징 범위를 다툴 여지가 있지만 항소 포기로 가능성이 사라졌다. 남은 건 민사소송뿐이지만, 성남시가 자금 흐름을 입증할 자료가 없어 환수는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항소 포기 후폭풍 속에 검찰을 떠난 노만석 전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검찰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 결정에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조직에 상처만 남기고, 수천억 원 공적 손실을 낳은 최악의 판단이 됐다.

이후민 기자
이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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