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은 기억의 숲을 가지고 있다/ 숲은 닫히지 않은 문을 가지고 있다/ 언덕은 회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닫히지 않은 문은 이미 닫혔던 기억으로 환하고/ 언덕의 마음은 누구의 것도 아닌 언덕의 것으로 찬란하다

-이제니 ‘나의 언덕 위로 해변의 부드러움이’(시집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서점 또한 주말이 따로 없다. 독서가 여가활동이 되어버린 이제는 주말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주말에 쉬는 건 언감생심이다. 고심 끝에 가장 어중간해 보이는 목요일에 쉬기로 한 지도 10년이 되어간다.

평일의 휴식에도 제법 매력이 있다. 웨이팅 없이 식당을 이용할 수 있고 붐비는 쇼핑가도 여유롭게 오갈 수 있다. 사람 많기로는 어디 빠지지 않는 삼청동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것도 목요일 한낮이기 때문일 터다. 카메라를 챙겨 들고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채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았다. 대학 시절, 지금처럼 유명 관광지가 아니던 때에 나의 자취집이 이 동네에 있었다. 참 많이도 변했다. 이젠 편의점도 있고 상점도 많구나. 왠지 모를 상실감도 느끼면서 주택가가 있는 언덕으로 접어들자 예전 모습 그대로인 집들이 처마와 처마를 맞대고 늘어서 있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기억 없는 곳이 없었고, 사라지지 않는, 지워질 리 없는 그러나 잊고 있었던 시절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고 더러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누가 그랬는데. 서울 사람은 모두 실향민이라고. 쉬이 개발되어 고향의 면모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기억의 장소성을 생각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

하나둘 불 밝히기 시작하는 저물녘 언덕 위에서, 이 풍경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애틋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지금 이 장면 또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일 거라고, 또다시 훗날의 나는 이 장면을 더듬게 될 거라고 짐작했다.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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