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제일 존경받는 조지 워싱턴(1732∼1799)은 “왕이 될 수 있었던 인물”로 불린다. 대륙군 총사령관으로서 대영(對英)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은 ‘신생국엔 강력한 권력자가 필요하다’는 충고에 따라 왕위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후 초대 대통령으로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미국을 이끌었고 두 번의 임기를 마친 뒤엔 스스로 물러나 3선 금지 전통도 만들었다. 그는 왕이 되겠다는 개인적 야망보다 공화주의 원칙과 민주주의의 관습을 중시한 세계 최초의 대통령이다.
워싱턴이 군주적 이미지를 거부한 것과 관련한 얘기는 수없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생전에 자신의 초상을 화폐에 넣지 말라는 유훈이다. 미국 시민주화자문위원회 위원인 도널드 스카린치는 최근 미 공영라디오(NPR)와의 인터뷰에서 “워싱턴은 ‘미국은 왕의 시대를 끝낸 나라’라고 말하며 생전에 자신의 초상을 화폐에 넣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영웅화하는 것은 공화주의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입장에서 이 같은 지침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워싱턴 초상은 사후 1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화폐에 담기기 시작했다. 현재 유통되는 25센트(쿼터) 동전과 1달러 지폐에 그의 초상이 담겨 있다.
미국 재무부가 올해 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초상이 담긴 1달러 동전 발행을 검토 중이라며 지난 5일 시안을 공개한 뒤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9명은 재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개인 숭배로 비칠 수 있다’며 ‘트럼프 주화’를 발행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군주국이나 독재국이 되려는 것이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화폐박물관의 더글러스 머드 관장은 “살아있는 지도자를 화폐에 넣는 것은 군주제의 상징”이라면서 “주화에 현직 대통령을 새기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내 생각이 중요할 뿐 국제법은 필요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이미 스스로 ‘미국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주화가 발행된다면 미국이 워싱턴이 구축한 공화제를 건국 250년 만에 뒤집고 ‘트럼프식 권위주의국가’로 가는 신호탄이 될 것 같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