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前 국방부 차관,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 무인기(드론)가 북측 영공을 침범했다는 북한의 비방과 이어진 행보는, 우리 정부에 굴욕적인 행보를 강요한 것이다. 남북대화를 위해 가급적 북한을 달래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호의도 반복되면 권리가 되고 나아가 국가 관행이 된다. 궁지에 몰린 듯한 해명보다는 공동 조사를 요구하며 당당히 대응해야 한다.

북한과의 협상에 관한 필독서가 있다. 6·25 정전 협상 초기에 유엔군 수석대표였던 터너 조이 제독의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라는 책이다. 실제 휴전 협상의 경험이 담겨 있는데, 공산주의자들은 심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하며, 유리한 협상을 위해서는 명백한 사실조차 부인한다는 내용도 있다.

북한이 누가 봐도 군사용이 아닌 무인기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이유는 ‘9차 당대회’를 앞두고 대외 강경 기조를 만들어가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을 적대시 정책으로 과장하며 ‘핵무력 건설’ 명분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김정은 체제에 충성하라는 메시지를 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계산에 따라 그들에게 유리한 결론이 전제된 ‘남한 무인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북측은 그간 수없이 침투시켜 온 자신들의 무인기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배경이 이럴진대, 우리는 대화 재개에 아무리 목이 말라도 북한 정권의 의도에 발맞출 필요는 없다. 어차피 북한은 자신들의 셈법대로 대화에 나오거나 문을 걸어 잠그며 김정은 체제에 유리한 행보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서 전쟁 특수(特需)가 사라지거나 중·러 등 주변국 관계에 어려움이 따르면 대외 여건 개선을 위해 대화에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들의 핵 보유가 인정되는 전제에서만 대화에 임할 것인데, 한국이나 미국이 북핵을 용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대화가 아닌 대결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북한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우리의 원칙에 따라 당당한 대응이 필요하다.

유의해야 할 점은, 북한의 막말·하대(下待)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주권과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발언에 신중하게 대응하되, 우리의 국격을 훼손하는 내용이 있다면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한 남북관계의 올바른 관행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번 무인기 억지와 관련해서는 북측 주장을 검증할 공동 조사를 제안해야 한다. 공동 조사 제안을 ‘검토’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북한 주장의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공동조사단을 꾸리고, 이들의 활동과 함께 무인기 관련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세부 조치를 논의하자고 요구해야 한다. 물론 북한은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다. 진상이 밝혀지면 유리한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급해할 이유도 없다. 북한이 공동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것은 그들 스스로 뒤가 구리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북한이 응해 온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이때는 의제 설정이 중요하다. 실체적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조사 방식과 이행 절차, 그리고 후속 조치들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선전장이 아닌 실질적 긴장 완화의 장(場)이 마련될 수 있다.

신범철 前 국방부 차관,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신범철 前 국방부 차관,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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