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문화부 차장

어른. 사전은 ‘다 자란 사람’, 혹은 ‘나이나 지위·항렬이 높은 사람’이라고 이 단어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어른이 견지해야 할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최근 정치·사회적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갑질과 폭언 등 일탈을 일삼는 지도층의 이야기가 연일 신문 사회면을 도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른이 되거나,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5일 숨진 배우 안성기의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준다. 그는 5일장을 치르고 9일 영면에 들었다. 영결식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이곳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고인이 1985년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고, 2018년 장남을 장가보낸 장소다. 그곳에서 이승의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다.

이곳에서 장남 다빈 씨는 지난 1993년, 다섯 살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를 낭독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다빈아’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아빠는 다빈이가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담았다. 그리고 “다빈아,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것 잊지 말아라”라고 당부했다.

이 편지를 쓰던 안성기의 나이는 불과 41세였다. 고인이 이런 편지를 썼다는 것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다. 고인이 아들에게 바랐던 ‘착한 사람’의 삶을 직접 실천하며 평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가난한 감독과 제작사를 위해 기꺼이 ‘노 개런티’로 작품에 참여하고, IMF(국제통화기금) 구제를 받던 시절에는 모델로 나섰던 광고 출연료를 스스로 낮췄다. 40년 넘게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주연 배우로 각광받던 시기에도 포니와 브리사, 포니2 등 국산차를 고집했던 일 등을 충무로에서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고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욕설은, 운전 중 난폭 운전자에게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나쁜 놈” 정도였다.

그리고 요즘 잘파(Z+알파)세대에 주목받는 어른이 한 명 더 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요리계급전쟁2’에 참여한 최고령 참가자 후덕죽(76) 중식 셰프다. 후진타오·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등의 만찬을 책임지고, 조리사 최초로 S호텔 임원 자리까지 오른 그지만, 결코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뒤에서 묵묵히 후배 셰프를 지원하며 “이 판이 잘 돌아가면 된다”고 모두를 다독였다.

이 모습을 보며 잘파 세대들은 ‘후덕죽적(的) 사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이 항상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로 ‘원영적 사고’라는 말을 낳았듯, 후 셰프의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팀워크를 중시하는 마음가짐에 젊은 세대들이 존경의 뜻을 담아 이 같은 신조어를 붙인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원래 의미와는 달리,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될 수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존경받는 어른이 많은 세상은 풍요롭다. 좌절의 순간, 믿고 기댈 곳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어른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참된 어른을 만나기 어려운 현실의 반영이기에 안타깝다.

안진용 문화부 차장
안진용 문화부 차장
안진용 기자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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