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논설위원
공천 뇌물 요구 정치 비리 만연
지방 의원 5000만~1억 원 대가
부패 바이러스 사회 급속 확산
여야, 강한 대책 마련 서둘러야
靑, 감찰관 임명 지연 위험 신호
함정 수사 허용 특단 대책 필요
“구정 선물로는 너무 많고 공천 헌금으로는 너무 적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와 설 연휴를 앞두고 국회의원 부인에게 500만 원을 전달하려다 이런 핀잔을 들은 구의원은 두 달 후 500만 원을 더해 1000만 원을 준비했지만 “더 필요하다”는 말만 들었다. 며칠 뒤 “사모님에게 말했던 돈을 달라”는 전화를 받고 1000만 원을 건넸다. 공천 대가로 총선 자금을 요구받은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김병기(서울 동작갑) 의원의 공천 헌금 관련 탄원서 내용이다. 2년이 지난 2022년 서울 시의원의 공천 뇌물은 1억 원이 됐다. 강선우(서울 강서갑) 의원은 김경 서울 시의원으로부터 공천 대가로 1억 원을 받은 것이 들통나 민주당에서 제명됐다. 6년 전, 4년 전 일이니, 현재 공천을 사고파는 ‘매천매관(賣薦賣官)’ 검은돈 액수가 급증한 것은 불문가지다. 구의원은 5000만 원, 시의원은 1억 원이라는 시세표가 있다고 한다.
명절(설) 때도, 공천 때도 받았고, 정해진 금액이 있는데 왜 어겼느냐는 식의 노골적인 요구는 검은돈이 정치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고백의 방증이다. 두 의원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부패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막고 자유로운 경쟁을 차단해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갔다. 그래서 회사든, 정치든, 국가든 부패하면 망한다. 정치가 민심과 더 멀어지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을 정치 부패와 관련해 천착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부패는 준다고 한다.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가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을 더 늘어나게 한다면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다. 시의원과 구의원이 돈을 모아 국회의원에게 공천 대가 성격의 수천만 원 후원금을 내는 것은 관행이 됐다.
‘휴먼 에러’ 식으로 몰아가면 정치 부패를 근절할 수 없다. 김 의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공천 헌금, 부인 법인카드 유용, 아들 대학 특혜 편입, 수사 무마 정황 등 총체적 정치 부패 성격이 짙다. 우선, 탄원서 진위 및 묵살 경위, 윗선 개입 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로 당의 시스템 에러를 바로잡고, 전수조사를 통해 부패 실태를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필요하면 특검을 도입해 일벌백계해야 한다. 구조화된 정치 부패를 뿌리 뽑는 강력한 반부패 대책 등 제도화에 앞장서는 것은 집권 여당의 책무다. 자각 능력과 정화 능력이 없는 권력은 부패의 온상이 되기 쉽다. 그런 권력은 부패의 수단이자, 부패 보호막일 뿐이다. 국민의힘도 정치 개혁 차원에서 해법을 찾는 노력을 하면 지지층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권발 부패는 정권에 치명타다. 집권 초반부터 386 청와대 핵심 측근과 친인척 비리로 휘청였던 노무현 정권이 그랬고,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도 아들 등 친인척 스캔들과 게이트로 통치 기반이 급속히 와해했다. ‘권력이 집중되면 반드시 부패한다.’ 현 정권이 새겨야 할 말이다. 부패는 들키지 않으면 거래 당사자들은 엄청난 이익을 얻지만, 피해는 다른 사람이 분산해 짊어지는 구조다. 그래서 방지턱이 한번 무너지면 부패 바이러스는 급속히 퍼진다. 윗물이 흐려지면 아랫물은 바로 썩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특별감찰관 임명을 미루는 것은 아주 위험한 신호다.
음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부패는 적발이 어렵고 증거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언론의 감시 역할이 중요하다. 오는 7월 발효 예정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정치인, 공직자 등 권력층이 언론 기사를 ‘허위 또는 조작’으로 몰아 징벌적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입틀막’ 수단으로 악용돼 부패 의혹 취재와 보도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정치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과 철저한 예방이 필수다. 미국, 싱가포르처럼 부패 수사에 함정 수사를 허용하고, 권력층에 한해서는 명예훼손죄를 완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부패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부패를 아예 생각 못 하게 몇십 배 징벌적 벌금을 물리는 방안도 좋은 예방법이 될 수 있다. 22년 전 제16대 대선 자금 차떼기 사건 이후 정치권 검은돈 근절을 목표로 개정된 정치자금법 등(일명 오세훈법)의 실효가 끝난 것 같다. 부패가 나라를 갉아먹는데, 검찰청이 해체되면 제대로 수사할 곳이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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