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논설위원

이란 내 반정부 시위 사태가 악화일로다. 영국 BBC 방송은 “이란 군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했다”는 시위자의 목소리를 전했다. 시위에 참가한 한 여대생이 지근 거리에서 뒤통수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는 외신 기사도 나왔다. 지난해 12월 28일 생활고를 겪는 시장 상인에서 시작해 학생과 중산층으로 확대된 반정부 시위가 보름 이상 이어지며 참혹한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이란인권(IHR) 등은 사망자 수가 3000명 이상이라고 밝혔으나 2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테헤란 인근 도시에선 오토바이를 탄 군인들이 골목을 다니며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나왔다.

이란 당국은 지난 8일부터 모든 인터넷과 국제전화 접속마저 차단했다. 그나마 시위 소식을 외부 세계에 전할 수 있는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 접속을 막기 위해 당국이 군사 장비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최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불태우며 담뱃불을 붙인 영상을 올린 미국 거주 이란계 여성은 이번 시위의 상징이 됐다.

1979년 친미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시아파 정권은 루홀라 호메이니와 이를 잇는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가 45년 이상 강력한 신정(神政) 일치 체제를 유지했다. 1999년 학생 시위와 2009년 녹색 운동, 2022년 히잡 반대 반정부 시위가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질적으로 다르다. 하메네이의 퇴진을 겨냥한 체제 전복 시위이기 때문이다. 핵 개발에 따른 미국의 제재 등의 영향으로 급락한 리알화와 물가 상승 등 경제난으로 시작됐지만,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치른 ‘12일 전쟁’에서 패한 뒤 하메네이의 권위가 붕괴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이란의 지원에도 레바논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 등 시아파 저항의 축이 무너진 것도 정권 위기를 가중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군사 개입 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 중이다. 이란 지도부는 결사 항전 태세지만, 뒤론 핵 협상을 하자며 손을 내밀고 있다. 망명한 팔레비 왕조의 유일한 왕세자 레자 팔레비는 민주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란 국민이 그를 선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트럼프의 선택과 이란 지도부 대응의 가변성이 커지면서 이란 정국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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