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일본 와세다대·릿쿄대 명예교수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다음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주 중국 국빈방문에서 귀국한 지 1주일 만에 다시 정상외교에 나선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와는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래 두 번째 만남이다. 큰 사건이 잇달아 터지는 ‘트럼프 2.0’ 시대의 국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번 방일은 경주에서 합의한 셔틀외교의 일환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일본 측의 극진한 환대가 두드러졌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 장소인 호텔 현관까지 직접 나와서 이 대통령 내외를 영접하는 등 파격적인 환영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취미인 드럼을 이 대통령과 합주하는 깜짝 이벤트도 준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도 두 정상의 ‘친근감’을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신의 발언으로 중일 갈등을 초래한 다카이치 총리로서는 한일 관계 개선은 중요한 외교 실적이 된다. 외교 일정이 끝난 직후인 14일 오후에는 국회 해산과 총선거를 결정했다. 외교의 성과가 한층 필요한 상황이다.
회담을 전하는 일본 미디어 보도는 한일 ‘협력’ 무드로 뒤덮였다. 그 배경에 한중 정상회담의 ‘성공’에 대한 경계감이 있음도 숨기지 않았다. 한일 정상회담을 전하는 많은 일본의 해설 프로그램들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지난 주 베이징에서 있었던 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셀카 장면이 소환됐다. 중일이 한국을 두고 줄다리기하는 형국이다. 중일 관계 악화가 한국 외교의 입지를 넓히는 기회가 된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이를 어떻게 구체적 성과로 이어갈지는 쉽지 않은 과제다.
이번 회담에서 인공지능(AI), 지식재산 보호, 초국가 스캠(scam·신용 사기) 범죄, 청년세대 교류 등 경제·민생 분야를 중심으로 한일 협력의 구체적 성과를 도출한 것은 양국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또한, 과거사 문제의 일환으로 1942년 조세이(長生) 해저 탄광 사고로 희생된 조선인의 유해를 공동 발굴하고 감식하는 데 합의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이다.
그러나 ‘우호’와 ‘협력’이 강조된 두 정상의 공동 언론 발표에서도 양국의 방향성에는 차이점이 두드러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지역 안정을 위한 한일 및 한일미 협력”과 “경제안보 분야의 전략적 협력”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그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한중일 3국의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중일 갈등과는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지역적 해법을 찾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는 않은 길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완전한 비핵화”를 되풀이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이 대통령은 양국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한반도와 관련한 구체적 구상을 피력했다고 전해지는 이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와도 깊은 얘기를 나눴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4월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큰 계기로 하면서, 이재명 정부 ‘실용외교’의 줄타기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