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개인전 ‘휴먼 모멘트’ 16일부터

서울 중구 피크닉서 80점 선보여

15일 서울 중구 피크닉에 전시된 자신의 사진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박용만 전 두산 회장. 박동미 기자
15일 서울 중구 피크닉에 전시된 자신의 사진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박용만 전 두산 회장. 박동미 기자

“정치권에서 저를 찾아요? 왜요?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사진작가이고 싶어요. 개인 SNS에도 다른 설명 하나 없이 ‘포토그래퍼’만 써 뒀어요.”

두산 그룹과 대한상공회의소를 이끌던 박용만(71) 전 회장은 손사레를 쳤다. 오는 16일 개막하는 첫 단독 사진전을 앞두고 15일 서울 중구의 전시공간 피크닉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서울시장 출마설 등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 “가능성 0%” 라며 일축했다. 그리고 사진 작가로의 데뷔를 선언했다.

“50년 넘게 사진을 찍었는데 공개하는 건 겁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일흔이 되고 보니, 더 늦기 전에 한번 평가받고 싶어졌어요. 전시된 사진들을 보니 기쁘고 좋네요. 아주 못찍진 않은 것 같습니다(웃음).”

15일 서울 중구 피크닉에서 박용만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박동미 기자
15일 서울 중구 피크닉에서 박용만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박동미 기자

전시 제목은 ‘휴먼 모멘트(Human Moment)’. 80점의 출품작이 모두 ‘사람의 순간’을 말하고 있다. 사람이 있든 없든,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손길과 흔적이 있다. 예컨대, 나무만 가득한 풍경이라고 해도, 그것 역시 사람이 가꿔 놓은 숲이기에, 결국 ‘사람의 순간’이 된다. ‘신인’ 사진작가 박용만은 “사람이 좋다”고 했다. “사람이 직접 나오는 장면뿐만 아니라 사람이 스친 흔적에도 시선이 멈추곤 합니다. 사람 사이의 다정함, 평화로운 공존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박용만 작가가 프랑스 파리의 한 공원에서 촬영한 사진. 관광객으로 보이는 노부부 뒤로 젊은 연인이 키스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작가 제공
박용만 작가가 프랑스 파리의 한 공원에서 촬영한 사진. 관광객으로 보이는 노부부 뒤로 젊은 연인이 키스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작가 제공

전시작 대부분은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하다. 개방 초기 중국에서 만난 홍위병 출신 관리들의 표정없는 얼굴, 노르웨이 출장 중 초원을 거니는 직원, 연인 옆에서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여성, 포장마차 그림자로 비치는 커플의 키스 장면, 눈밭에서 뛰어다니는 강아지…. 그의 사진은 강렬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시선과 마음을 끌어당긴 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재치와 유머, 그리고 ‘인간다움’이 있어서다. 그는 “우리가 가장 인간다울 때는 편안하게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있을 때 같다”고 했다. 그래서 되도록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때 촬영한다고 덧붙였다.

박 작가 가족들의 사진도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스위스 레만호수 옆에 앉아 있는 아내의 모습, 일본 여행 중 찍은 두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 등이 눈길을 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내 사진들, 즉 나를 사로잡았던 순간들을 다른 사람들도 공감해 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박용만 작가가 서울 중구 피크닉 야외 공간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그의 첫 개인전 ‘휴먼 모멘트’는 작품 제목과 촬영 시기 등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박 작가는 “설명이 많은 걸 오염시킨다”고 말했다. 박동미 기자
박용만 작가가 서울 중구 피크닉 야외 공간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그의 첫 개인전 ‘휴먼 모멘트’는 작품 제목과 촬영 시기 등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박 작가는 “설명이 많은 걸 오염시킨다”고 말했다. 박동미 기자

전시장 4층 야외 공간에 설치된 흑백 사진들은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박 작가의 냉철한 시선을 엿보게 한다. 노인이나 노숙자, 재개발을 앞둔 판자촌 등이 담긴 사진들 뒤로 서울의 실제 빌딩 숲이 펼쳐진다. 그는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앞에 둔 선진국이지만 이런 모습이 공존하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고 함께 생각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박 작가가 처음 제대로 사진을 찍은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당시 그는 아버지(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가 쓰던 리코 카메라로 공병을 줍는 아이가 철조망을 넘어가는 모습을 찍었다. 이 작품이 교내 사진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더욱 사진에 빠져들었고, 한때는 사진 기자를 꿈꾸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했다. “한번 더 그런 시기가 왔어요. 1990년대 기업에서 나와 전업 사진가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가족들을 건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기업인에서 사진작가로 변신한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15일 서울 중구 피크닉에서 자신의 아내를 찍은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인에서 사진작가로 변신한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15일 서울 중구 피크닉에서 자신의 아내를 찍은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의 내려놓음. 그는 “이제야 사진 작가가 된 것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전시장 4개 층을 자신의 사진으로 가득 채우는 대형 전시를 이뤄냈다. “이렇게 큰 전시를 다시 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앞으로 더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 수도 없을 겁니다. 그저 해온 것처럼 하려고요. 평화로움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진, ‘다시 보고 싶은 사진’을 계속 찍으려고요.”

전시는 내달 15일까지. 관람은 무료다.

박동미 기자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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