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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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머리 모양은 패션 산업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다. 헤어스타일은 옷과의 조화, 얼굴형을 보완하는 커트, 유행에 맞춘 염색과 스타일링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우리는 역사 속 장면에서 상투, 변발, 땋은 머리 등을 보며 “그 시대에도 나름의 트렌드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역사적으로 볼 때, 전통 사회의 헤어스타일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패션과는 전혀 다른 이유와 맥락 속에서 형성됐다.

과거의 머리 모양은 ‘멋’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 질서와 규범을 드러내는 표식이었다. 전통 사회에서 헤어스타일은 패션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전달하는 하나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취향보다 공동체의 규칙이 우선시됐고, 머리 모양은 신분, 성별, 연령, 혼인 여부 등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동했다. 조선 시대에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가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중대한 훼손으로 여겨졌다.

여성의 헤어스타일 역시 개인적 선택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 상류층과 서민층의 머리 모양은 엄격히 구분됐다. 나이와 신분에 따라 허용되는 형태가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1895년, 을미개혁 과정에서 김홍집 내각이 단행한 ‘단발령’이다. 당시 단발은 위생 개선과 감염병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적극 권장됐지만, 실제로는 근대화와 서구식 제도를 상징하는 조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 서구식 미용 기술인 ‘퍼머넌트 웨이브’(일명 파마)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비로소 머리 모양은 인위적으로 바꾸고 연출하는 대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머리 모양은 유행에 따라 변화하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스타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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