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채의 인문 디톡스 - (2) 헤겔 ‘정신현상학’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데서 ‘욕망’이 시작
외부로 시선 돌리면 괴로움은 보편적 인간조건임을 깨달아
청소년기 방황서 성년 세계까지 두 번의 도약 필요
이해력 생겨나고 성찰·객관적 인식 뒤 세상 이치 통찰
경력·재산은 공허한 것… 사람은 그저 할 일을 할 뿐
1.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법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가당찮은 질문이다. 사람 사는 일은 수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가 구조적 우발성의 산물이다. 앞날에 대해 한 치 앞도 모르는 존재가 어떻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주어진 삶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아낼까. 정신현상학(1807)은 이 질문에 대한 헤겔의 대답이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눈앞의 혼돈을 거두어 가슴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 책은 그 대답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적 성장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정신현상학을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2.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책이다. 왜 어려울까. 헤겔의 난삽한 용어와 문장도 그렇지만, 책에 담긴 내용이 범위가 넓고 추상도가 높기 때문이다. 19세기의 출발을 서른의 나이로 맞았던 철학자 헤겔 앞에는, 현재의 자신에 이르게 한 사상의 흐름이 놓여 있었다. 다양한 갈래와 흐름을 하나로 버무려서, 사상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체계로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형이상학과 인식론, 윤리학이 하나로 묶여 있어, 인간의 삶에 관한 종합철학서라 할 만하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스타일은 특히 난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책이 성장소설이라고? ‘데미안’이나 ‘외딴 방’ 같은?
정신현상학은 헤겔이 펴낸 첫 번째 주저로서, 책의 구성은 세 가지 맥락을 함축하고 있다. 서양 사상사의 전개 과정, 헤겔 자신의 성장 과정, 그리고 한 개인이 아이에서 제대로 된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우선, 이 과정은 단순한 감각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대상에 대한 이해력이 생겨나고(의식), 그 이해력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과 판단(자기의식)이 이어진다. 여기까지가 유아에서 청소년기에 이르는 과정이며, 역사적으로는 그리스 로마와 초기 기독교 사상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객관적 인식의 단계(이성)를 거쳐 마침내 세상 속으로 나아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정신)를 깨닫게 된다. 이 단계는 청년기의 수업 시대를 거쳐 성인으로서 활동하는 시기에 해당하며,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거쳐 헤겔 자신에게 이르는 과정이 함축돼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절대지의 영역, 세상 돌아가는 이치의 핵심(절대정신)을 정확하게 통찰하게 되는 단계이다.
요컨대 단순한 의식에서 절대지에 이르는 과정이란 세계의 본질과 삶의 이치를 체득하는 과정인데, 각 단계에서 필수적인 것은 성장을 위한 도약이다. 특히 두 번의 도약이 두드러진다. 청소년기의 방황을 끝내고 수업 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자기의식에서 이성으로), 그리고 수업 시대를 마치고 성년의 세계로 들어서는 과정(이성에서 정신으로). 이 두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주체는 격렬한 정신적 동요를 겪어야 한다. 욕망의 괴로움, 행위의 초라함, 그리고 내용 없는 도덕의 공허에 직면해야 한다. 그것을 헤겔은 ‘불행한 의식’이라 칭했다. 여기에서 작동하는 것이,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3. ‘불행한 의식’의 출발점은 인간이 욕망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있다. 단순히 필요의 충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욕망이다. 욕망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싸움을 낳고, 승패가 갈리면서 주인과 노예가 생겨난다. 노예는 생명을 보존하는 대신 노동을 통해 주인을 섬기고, 주인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움에 임한 덕분에 주인의 지위를 누린다. 그런데도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비참한 처지의 노예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쾌락을 누리는 주인 역시 어느 날 문득 불안과 공허감에 빠진다. 세상을 만들고 유지하는 진짜 주인은 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노예가 있어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뒷머리를 때리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으로 인해 자기가 누리는 쾌락이 불편해지고 마침내는 괴로워진다.
이 상태에서 두 가지 마음이 생겨난다. 삶의 의미나 근본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어차피 아무도 모르잖아!) 당장 주어진 일이나 잘하자는 식의 회의주의가 한편에, 재산도 쾌락도 포기하고 욕망 자체마저 끊어내자는 식의 금욕주의(절제의 끝은 금욕이야!)가 다른 한편에 자리 잡는다. ‘불행한 의식’이란 이 두 극단으로 분열돼 있는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마음속의 주인과 노예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을 괴로운 마음으로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 상태, 그것이 곧 ‘불행한 의식’이며, 자기의식이 도달하는 마지막 영역이다.
어떻게 이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눈길을 자기 외부로 돌리는 순간, 자기의식에서 이성으로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불행한 의식’으로 인해 괴로운 마음이 나만은 아니라는 것, 내 친구도 내 부모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니까 그 괴로움은 보편적 인간 조건이라는 깨달음이, 자기의식의 주관성을 이성이라는 객관적 인식으로 바꾸어놓는다. 외부로 눈길을 돌린 자기의식은 이제 남들은 어떤지를 관찰하고 싶어 한다. 방황하던 아이는 이제 고등교육을 받을 때가 되었다. 이성의 핵심은 관찰하는 정신이다. 세상과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그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자기 괴로움을 살핀다. 그렇게 주관적 자기의식은 객관적 이성이 된다.
이성이 된 자기의식은 이제 저 ‘불행한 의식’으로부터 벗어났는가. 물론 그럴 수는 없다. 객관적 관찰이 불행의 양을 덜어줄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는 까닭이다. 게다가 이성의 영역은 또 다른 괴로움을 낳는다. 관찰하고 살피는 일이란 내용 없는 형식적 관념의 공허감과 마주하게 된다. 책 안에 있는 것은 그저 말뿐인 세계임을 이성은 알게 된다. 책은 진실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책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제대로 된 사랑의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제는 두 번째 도약이 필요한 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채로 행동하는 것, 이성을 통해 통찰하게 된 앎을 실행의 차원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곧 자기의식이 행하는 두 번째 도약이자 이성에서 정신으로의 도약이다. 청년이 된 아이는 이제 진짜 삶의 현실성 속에서 정신을 차리게 된다. 다른 존재들과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공동체 속으로, 불안한 존재들이 서로 기대며 만들어내는 공동 의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청년은 어른이 된다.
4. 성년이 된 주체가 넘어서야 할 종국적 허들은 정신의 공허감, 애써 확보한 경력과 재산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공허감이다.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 마지막 절대지의 단계이다. 공허의 혼돈이 눈앞을 흐리는 것은 심각한 사태다. 사람에게는 공허감이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다. 눈앞의 어둠을 내 마음속으로 옮겨놓는 것, 혼돈이 나를 사로잡기 전에 내가 혼돈을 거둬들여 내 안의 어둠 속에 집어넣는 것, 그것이 절대지의 일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세계와 자아의 위대한 합일 같은 것은 망상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내 심장 속의 어둠을 응시하는 것이 절대지의 차원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할 일을 한다.
문학평론가
■ 서영채 프로필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문학평론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1994∼2015). ‘동아시아 비교문학’ ‘풍경이 온다’등 집필.
■ 인물 설명
헤겔 (G W F Hegel·1770~1831)
근대 서양철학사의 거대한 호수 같은 존재다. 헤겔은 1770년생으로 베토벤과 동갑이고, 나폴레옹은 한 살 많은 1769년생이다. 각각의 영역에서 이들은 모두 근대성을 대표하는 존재들이다. 한국에서는 1762년생 다산 정약용과 1752년생 정조가 이들에게 상응하는 인물들이다. 37세의 나폴레옹이 프랑스 국민군을 이끌고 예나에서 전투를 벌일 때, 예나 대학의 강사였던 헤겔은 아버지의 유산을 까먹으며 정신현상학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학자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수 자리가 필요했고, 저작 활동을 통해 명성을 얻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이 책에는 그런 상황의 정신적 고투가 배어 있기도 하다. 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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