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 루시 워즐리 지음│ 홍한별 옮김│위즈덤하우스

 

1차 세계대전때 간호 봉사활동

첫 작품속 약제사 자신이 모델

약혼자 선물, 극중 살인무기로

 

이혼후 오리엔트 특급열차 여행

2등 객실서 탑승자 관찰해가며

히트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써

 

시대앞선 할머니탐정 제인 마플

캐릭터 통해 ‘약자 승리’ 메시지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스틸컷.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그의 작품들은 1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20억 부가 넘는 판매량을 올렸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스틸컷.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그의 작품들은 1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20억 부가 넘는 판매량을 올렸다.

소싯적 동경의 대상 중 하나는 셜록 홈스였다. 그의 추리는 눈부셨다. 한동안 탐정을 꿈꾸기도 했으니, 또 다른 탐정은 누가 있나 궁금했다. 카이젤 수염이 멋진 에르퀼 푸아로가 눈에 들어왔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 강의 죽음’ 등에 등장한 그는 ‘세계 최고의 탐정’이라는 자부심이 아깝지 않았다. 애거사 크리스티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애거사가 창조한 탐정 캐릭터, 즉 에르퀼 푸아로와 미스 마플(제인 마플) 정도는 아는 사람이 많다. 한데 정작 애거사가 평생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나 간호사 등으로 일했다는 점은 잘 알지 못한다.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는 작가이자 생활인이었던 애거사의 삶을 연대순으로 따라가며 그의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짚어낸다.

애거사는 1890년 9월 15일, 정원에 신령스러운 커다란 나무가 가득한 저택 애시필드에서 태어났다. 정원에서 “혼자서 이야기를 꾸며내고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내면서 행복하게” 놀던 소녀는, 그 “풍부하고 강렬한 감각”들을 글로 남기길 좋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애거사는 적십자 자원봉사자로 지원했고, 청소부터 시작했다. 이내 ‘간호 봉사대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수술장과 약국도 드나들었다. 그 사이 공군 조종사 아치볼드 크리스티와 결혼했고,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굳어졌다.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 등장하는 적십자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약제사 신시아는 애거사 그 자신이 모델이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때 휴가를 나온 약혼자 아치가 선물한 것으로 보이는 ‘페이퍼나이프’는 초기 미스터리 작품의 살인무기로 등장한다. 애거사는 작품을 발표하기 전부터 다 계획이 있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애거사 크리스티

시련이 없지는 않았다.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이 “여섯 군데가 넘는 출판사에서” 거절당하자 자신감을 잃었다. 애거사를 알아본 사람은 보들리 헤드(Bodley Head) 출판사의 존 레인이었다. 하지만 “몹시 박한 수준의 인세”로 계약하면서, 저자의 말마따나 애거사는 “평생의 일이 될 일을 매우 아마추어적으로 시작”했다. 그럼에도 “삶을 흡수해 작품의 재료로 활용”하는 데 애거사만 한 작가는 없었다. 1928년 10월 아치와 이혼한 애거사는 구설을 피해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몸을 싣는다. 2등 객실에서 애거사는 열차에 함께 탄 사람들을 “외부인이자 구경꾼의 관점”으로 유심히 관찰했다. 이후 두어 차례 더 여행을 했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탄생했다. 애거사는 디테일도 완성했다. 소설 속 기차 정차 시간을 1932년 기차 시각표와 정확히 맞췄다. 기차 여행에는 큰 행복도 따랐다. 훗날 남편이 되는 14세 연하의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맥스와 함께한 이라크 등지의 고고학 답사가 그의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된 것은 불문가지.

애거사를 조금 안다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일은 1926년 12월 일어난 11일간의 실종사건일 수밖에 없다. 애거사가 몰고 나간 차는 이튿날 발견되었고, 시신을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다. 언론은 애거사에 관한 온갖 말들을 지어냈다. 당시 이혼 이야기가 오가던 아치는 애거사가 “의도적으로 사라지는 방법”을 택해 자신을 살인 용의자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애거사는 거리가 꽤 먼 해러게이트의 하이드로패식 호텔에 ‘미시즈 터리사 닐’이라는 이름으로 머물고 있었다. 저자는 당시 상황과 증언 등을 엮어 정밀한 추리를 곁들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애거사의 실종 사건은 그 자신 외에 누구도 실체를 알지 못한다.

에르퀼 푸아로와 함께 애거사가 창조한 위대한 탐정인 제인 마플은, 애거사의 시대를 앞선 생각을 반영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애거사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선이 악을 이긴다, 약자도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미스 마플이다. 미스 마플은 작품 안에서 시시때때로 “여자들은 한데 뭉쳐야 해요”라는 말을 했다. 20세기 초반, 작가의 입으로는 직접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대신한 것이다. 애거사는 80세가 넘어서도 글을 쓴 끈질긴 작가였고, 그에 못지않은 성실한 생활인이었다.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생활인으로서의 면모가 어떤 과정과 노력을 거쳐 작품으로 거듭났는지 근사하게 직조한다는 점이다. 한때 탐정을 꿈꾸지 않았다고 해도, 꽤나 흥미로운 독서가 될 만한 책이다. 584쪽, 3만 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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